매일신문

편식하는 우리아이 영양챙기기

조리법 달리해 음식 거부감부터 줄여라

신모(34·여·대구 북구 동천동)씨는 식사 때마다 여섯 살 난 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한두 숟가락 밥을 뜨고는 숟가락을 놓아 버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콩이나 멸치, 야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찾는 반찬은 오로지 햄. 잘 먹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진다며 달래보고, 야단도 치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신씨는 "도통 안 먹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삐쩍 말랐다"며 "억지로라도 먹이려 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녀 보지만 반 그릇도 비우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밥 잘 먹는 아이들이 제일 부럽다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골고루 먹어줬으며 하고 바라지만 편식은 나아지지 않는다. 음식을 보면 신경질까지 부리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골라 먹는 아이, 성장에 지장 초래

한참 먹어야 클 때 밥투정을 하거나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 먹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안타깝다. 제대로 먹지 않아 성장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도 깊어진다. 실제로 성장기에 있는 많은 아이가 올바른 식사습관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연세대 정경미 교수팀이 1~12세 어린이 796명을 대상으로 식사습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 어린이 중 40% 이상이 올바르지 않은 음식섭취 태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에는 편식(81.7%)이 가장 많았고 '밥알을 세며 먹듯' 지나치게 긴 식사 시간(43.1%), 음식 외면하기·음식 뱉기·구역질·밥 먹다가 도망가기 등 문제 행동(28.1%),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거나 너무 오래 씹기(24.5%), 식사 거부(18%), 먹다가 토하는 행위(17.1%) 등의 순서로 많았다(중복 응답).

잘못된 식사 태도가 습관이 된 어린이는 제때 밥을 먹지 않고 과자 등으로 허기를 때우다가 비만·영양 불균형이 되거나, 거꾸로 식사를 거부하다가 발육 부진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장 발육이 왕성한 유아기(만 2~6세)의 식사 습관은 어른이 돼도 잘 바뀌지 않아 평생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음식 투정을 자라는 과정에서 생기는 흔한 일이라고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영남대병원 가정의학과 이근미 교수는 "잘못된 식습관은 성장 지체는 물론 집중력도 떨어뜨리고 질병에 대한 면역력 약화도 빚어질 수 있다"고 했다.

◆편식하는 아이, 음식과 가까워지는 게 우선

식욕 부진과 편식이 일어나기 쉬운 시기는 이유기와 4세 전후다. 이유기에는 이유식 조리법과 주는 방법이 문제가 있으며 4세쯤에는 자아가 발달하면서 싫은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태도로 나타난다. 이때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려 들면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밥투정을 고치려고 아이를 달래거나 윽박지르며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편식하는 아이의 식사습관을 고치려면 부모의 지혜와 노력이 중요하다. 우선 가족간 식사 기회를 늘리며 식사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경북대병원 서수원 영양파트장은 "외식이나 인스턴트 식품 섭취 등 갈수록 먹을거리의 외부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집 밖에서 파는 음식은 아이의 입맛을 사로잡도록 조리된 음식이 많아 여기에 길든 아이들은 집 음식을 점점 꺼리고 특정 음식만 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식품첨가제 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질이 떨어지고, 많이 먹게 하는 만큼 번거롭더라도 아이에게 재래식 밥상을 마주할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고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꼭 먹이고 싶다면 조리법을 달리해 친숙하도록 유도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시금치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대표적 음식. 어른이 먹는 것처럼 데치고 참기름으로 버무려 식탁에 올리면 아이는 평생 시금치를 먹지 않을 수 있다. 이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말이에 살짝 넣어 시금치와 가까워지는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다. 부모가 먼저 식탁에서 시금치를 집는 등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편식이 생기는 이유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정상적 과정 중의 하나다. 노출 기회가 많으면 그만큼 친숙해질 수 있다. 친숙하게 하면 아이들이 음식을 맛볼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영국의 리딩대학 심리학과 연구진들은 한 살짜리 아동을 가진 부모에게 야채와 과일이 두 개씩 그려진 그림책을 준 뒤 아이에게 2개는 매일 보여주고, 나머지 그림 2개는 보여주지 않았다. 2주간 반복 후 아이들에게 4가지 음식을 내놓자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자주 본 익숙한 과일에 더 호기심을 보이며 맛보려 했다.

상벌로 음식섭취를 유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 먹지 않는다고 벌을 주면 음식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 상을 남발하면 스스로 감정과 의지를 조절하는 능력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

식사를 거부하면 음식을 차릴 때마다 반드시 조금이라도 맛을 보게 하고 새로운 음식을 줄 때는 아이가 원래 좋아하는 음식과 맛·질감·색깔이 비슷한 것을 조금만 준다. 처음에 먹지 않으려고 해도 끼니 때마다 반복해 보여주면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이나 색깔이 화려한 식기, 숟가락, 젓가락으로 바꿔 아이 스스로 손이 가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빨간색, 오렌지색 등 식욕을 촉진하는 붉은 계열의 식탁보를 활용해볼 수도 있다.

아이가 식사를 시작하면 TV를 끄고 장난감을 치우는 등 주위를 산만하게 하지 않도록 한다. 식사 사이 간격은 최소 3, 4시간을 유지하며 목이 말라 하면 주스나 우유 대신 물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단 것을 먹으면 식욕이 떨어진다.

반찬투정 정도라면 아이와 함께 요리를 만들거나 메뉴를 다양화해 교정할 수 있다. 밥상을 차리고 한두 차례 불렀는데도 식탁에 앉지 않으면 식구들끼리 밥을 먹고 식사를 끝낸다. 그 뒤로 30분이 지나도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상을 치우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싫어한다고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고 10번은 주도록 한다. 시간과 장소, 조리방법을 달리하고 기분이 좋을 때를 이용한다. 이근미 교수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먹는 양보다는 영양소를 두루 갖춘 음식을 얼마나 먹느냐는 질이 중요하다"며 "많이 먹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심리가 크면 부모의 기준으로 편식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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