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관 시절도 부인이 학원운영해 생활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

"평생 평탄한 철도 레일 위만 걸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고 생각도 못한 일도 겪게 되는데 술만큼 서로 가까워지는 좋은 매개체는 없는 것 같습디다. 저는 술의 긍정적 측면을 좋아합니다."

사적인 모임에서 환갑의 나이에도 앞장서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는 모습을 봤던 터라 약주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더니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은 "아직도 사양은 않는다"며 술 예찬론을 폈다. 한창 때는 폭탄주 열댓잔도 문제없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그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한평생 쭉 뻗은 레일 위를 달려왔다. 올 3월 취임한 STX에너지 회장을 비롯해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무역협회 회장, 서울산업대학 총장 등 거쳐온 굵직굵직한 직함만 봐도 '성공 신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사)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 이사장 등 지금 갖고 있는 명함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그의 이력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공대(서울대 전자공학) 출신이라는 것. 서울대 행정대학원 재학 중 행정고시 12회에 수석합격했는데 이공계 출신으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역대 산자부 장관 중에서도 이공계 출신은 그가 최초였다. "원래 법대에 진학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남매를 홀로 고생하며 키운 모친(이동인'86)께서 안정적 생활을 위해선 공대가 나을 거라 하셔서 진로를 바꿨지요. 막상 대학 졸업 무렵에는 관료가 제게 더 맞는 것 같아 고시에 도전했지만요."

그는 자신의 장점으로는 '소탈'격의 없음'을 들었다. 회장 취임 후에도 부하직원들과 매주 한번 정도는 식사를 같이 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이 회장은 뛰어난 친화력으로 국내외 정'관'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고, STX그룹이 이 회장을 영입한 것도 그의 경륜과 함께 국제적 네트워크에 주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상공부 수출진흥과 사무관 이후 수출과장, 주미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등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외국과 인연이 많았죠. 해외비즈니스는 네트워크가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열댓권에 이르는 명함보관첩이 새삼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단점으로 '일 중독증'을 꼽았다. "돌이켜 보면 차관보 때까지는 한번도 주말에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차관이 되면서 관용차량 기사와 비서가 싫어할 것 같아 주말 출근을 그만뒀어요. 차관을 물러나면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외식을 했는데 애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더군요. 이제 좀 잘 해주려 하니 벌써 다 독립들 해버렸지만. 허허허." 그의 학창시절 별명이 '아범'이었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고위관료로서는 드물게 기업인으로 변신한 그는 '역지사지'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갑'이었던 공무원 시절부터 항상 가슴에 새겨왔다. '을'이 된 지금은 어떨까? "솔직히 공직에 있을 때는 현장을 많이 챙긴다고 챙겼는데 기업에 와보니 공무원들이 더 현장을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잊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부인의 내조도 컸다. 이화여대 사범대 출신인 부인 최춘자(60)씨가 시조모, 시어머니를 모시는 가운데에도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려온 것. "사실 지난해까지도 집사람이 직접 애들을 가르쳤어요. 제가 장관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소문이 안 나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둘째딸이 첼리스트가 되기도 했고요."

그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출신이다. 비록 그의 고향 월곡면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돼 찾아갈 길 없지만. 월곡초교와 안동중을 졸업한 뒤 서울사대부고로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뒤에도 지역과는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무역협회장 때는 대구무역회관을 확정했고, 고향 안동의 바이오연구원은 장관 때 결정했다. 논란도 있지만 대구시의 '밀라노프로젝트'도 그가 주무국장, 차관보로 있을 당시 추진됐다. 친척이자 동갑내기인 소설가 이문열씨와는 어릴 때부터 서로 왕래한 친한 친구 사이다.

"대구경북은 과거 인재의 도시, 교육의 도시로 명성이 높았죠. 하지만 앞으로 먹고살려면 기업도시가 불가피합니다. 값싼 공장 용지를 많이 공급하는 한편 공직자들도 기업을 섬기는 자세로 변화해야 합니다. 물론 시민들도 '나부터 희생하고 협력해서 지역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에 큰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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