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동호회 송년 모임으로 정한 날짜와 시간의 무작정 감상회에서 맞닥뜨린 작품은 첫 한불합작으로, 우니 르콩트라는 한국계 프랑스 여류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데뷔작인 '여행자'(2009년)였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이 몸이 애초에 들떴던 까닭은 정작 달리 있었다. 뭔가 기대가 되고 의뭉스러운 이창동이 공동각본에다 제작자로서 판을 벌이고, 나름대로 맛깔스러운 설경구와 문성근의 양념까지 곁들여져 있단다. 소풍날은 으레 그 전날 밤이 더 배가 부르고 설레듯이, 간만에 밤잠까지 설쳤다.
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삶'(Une Vie Toute Neuve)이라는 원제처럼, 친아빠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가 새로운 삶을 찾아서 입양이라는, 홀로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이다. 촬영 내내 북받치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였다는 감독의 고백과는 달리 영화는 극도로 절제된 화면과 이야기로 흘러간다. 애오라지 절망적인 희망에 매달려 온몸으로 부딪치고 몸부림치다가, 이윽고 마지막 안간힘마저 잦아들어버린 뒤에, 너무 일찍 알아버린 절망이라는 심연.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입버릇처럼 내뱉고들 하지만, 못내 도리질치다가 맞이한 조숙의 그늘진 상처는 깊고도 아프다. 의례적인 말만 던지고서는 불쑥 채혈을 마친 간호사에게, "미리 알려준다고 약속을 했잖아요?"라는 아이의 항변은 나지막하게 스쳐가지만, 처연하도록 매서운 분노로 들려온다. 이름표를 달고서 자못 당당하게 공항을 나서는 아이의 눈에는 그토록 기대고 싶었던 아빠의 든든한 등짝만이 스쳐간다. 이제는 잊어버린, 어쩜 지워버리고 싶은 아빠의 얼굴은 끝끝내 떠오르지 않고서 말이다. 극장 문을 나서는 나의 귓전을 울리며 따라오는 아이의 가냘프지만 끈질긴 노랫소리. '두 눈에 넘쳐흐르는 뜨거운 나의 눈물로 당신의 아픈 마음을 깨끗이 씻어 드릴게.' 뜨거운 눈물조차 되삼켜버린 아이의 눈앞에서, 이 땅의 어른으로서 차마 뻔뻔스럽게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눈물겨운 영화다.
"해외 입양이 여전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려되며, 입양 주선에 있어서 해당 어린이의 의사나 최상의 이익이 반드시 고려되는 것이 아니다. 1993년 헤이그 협약을 비준하라."
아직도 고아수출국인 우리들에게 던지는 UN의 촉구 내용이다. 해외로 아동을 입양 보낼 때, 최소한 몇 차례 국내 입양을 시도했다는 근거라도 보여 달라는 하소연이다. 피붙이라는 울타리 속의 한 가족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헌신적인 우리들의 앞모습과 끼리끼리 끼니거리를 나누어야 하는 담장 너머 같은 식구들에게는 자꾸만 인색하고 움츠러드는 뒷모습이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타는 목마름에 절망감조차 혼자서 삭여야 하는 아이들에게 한 방울의 물은 차라리 아프도록 눈부신 희망이다.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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