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줄서기의 심리학

인파로 넘치는 연말, 생기 넘쳐서 좋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불편 또한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최근엔 번호표 때문에 기다리는 과정이 공평해진 것 같아 많이 고무적이다. 번호표가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긴 해도 그 속엔 먼저 온 사람을 먼저 보내는(FIFO'First In First Out) 줄서기의 기본 원칙이 내재되어 있다. 그 원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평성이다.

하지만 번호표를 들고 있을 때에도 간혹 불쾌감을 느낄 때가 있다. 모든 창구의 직원이 고객을 상대하는 바쁜 상황에서, 한 창구의 직원은 고객을 상대하지 않고 컴퓨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정말 화가 난다. 고객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는 직원은 고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현명하다.

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봤다. 계산대에 도착했지만 모든 계산대가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중 하나를 택해 섰다. 줄이 짧아지던 즈음 한 점원이 옆의 새 계산대를 개방하였고, 옆줄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겠거니 했지만 웬걸 멀리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순간 점원은 줄서기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였고, 이때 고객들은 새치기당한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도심의 버스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 버스정류장에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전자게시판이 설치되어 시민들이 막연한 기다림에서 다소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출근시간에 제시되는 도착시간을 쉽게 믿는 사람은 없다. 버스 도착시간이 10분 전에서 1분까지 감소하다 다시 10분으로 수정될 때, 좌절감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물며 요즘같이 추운 겨울 날씨에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럴 땐 도착시간보다 내가 탑승할 버스가 현재 몇 정거장 전에 있는지 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재 버스의 위치뿐 아니라 같은 구간을 지나는 다른 버스들의 상황을 비교하다 보면, 교통 상태도 한번 추측해 볼 수도 있고('왜, 저 구간에서 모든 버스들이 움직이지 않지? 뭔가 사고가 났나?'), 그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지루함 또한 쉽게 잊게 된다.

이처럼 막연한 기다림은 불안과 초조감을 유발한다. 하물며 자신이 공평하지 않게 대우받는다고 여겨질 경우, 부정적 감정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 한 고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고객들도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 순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줄서기 속에 깊은 심리 현상이 숨어있는 것이다. 연말 고객을 상대하는 직종에서, 특히 관리직에 종사하는 분들께 이런 줄서기의 심리학을 한번 고려해 보시길 제안하고 싶다.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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