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는 여러 번에 걸쳐 관직을 고사한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파쟁(派爭)에서 정치적 약자였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을사사화 이후 정적(政敵)들의 표적이 된 퇴계는 수차례 출사(出仕)를 거절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단양군수를 자청한다. 인생의 장년기에 접어드는 48세의 일이었다. 그는 단양 곳곳을 여행하며 수많은 일화와 에피소드를 남겼다. 단양8경을 직접 명명했으며 봉우리마다 명문을 하고 정자마다 시문을 남겼다. 관기(官妓) 두향(杜香)과의 로맨스도 이때 일이다. 왜 단양 이었을까? 정치적 도피처로의 선택이었을까. 단순한 좌천이었을까. 아니면 단양과의 특별한 인연이라도? 그 비밀을 찾아 충북으로 떠났다.
□구담'옥순봉'충주호 천하 선경
단양군에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단양8경 비경들이 나타난다. 단성면에 있는 구담'옥순봉은 제5'6경에 랭크된 지역의 명소이자 산꾼들의 인기 명산. 구담봉은 기암, 절벽의 형태가 거북을 닮아 구봉(龜峰)이라 불렸고 물속에 있는 바위엔 거북무늬가 새겨져 구담(龜潭)이라 칭하니 둘을 합해서 구담봉(龜潭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올라 마치 죽순과 같다하여 옥순(玉筍)이라 불렸다고 한다. 두 봉우리를 품은 충주호는 1985년 조성된 국내 최대 호수. 내륙 속의 바다로 불릴 만큼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한다. 넉넉한 수량만큼 주변에 수많은 문화재와 비경들을 거느리고 있다.
내륙 선착장인 장회여울은 정선의 동강 못지않게 내륙 수운(水運)의 중추를 담당했던 곳. 물살이 거세 옛날 뗏목을 나르던 인부들이 무척 애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구담'옥순봉의 비경을 물길로 돌아오는 장회나루 뱃놀이는 당시 명품 관광코스. 전국 최고의 흥취로 여길 정도였다고 한다.
취재팀은 계란치를 들머리로 구담'옥순봉 산행에 나섰다. 계란치란 토정 이지함 선생이 이곳 지형이 '닭이 계란을 품고 있는 형세'로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구담봉을 오르는 길은 그저 평범한 마을 뒷산 같은 길이다. 송림 사이를 잠시 걷다보면 구담'옥순봉 갈림길이 나온다.
□장회나루 뱃놀이 조선시대 명품 관광코스
구담봉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장회나루가 일행을 맞는다. 장회나루는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충주호 관광의 최고 비경지로 꼽히고 있다. 나루의 협곡을 단구협(丹丘峽)이라 불렀는데 이는 조선시대 김일손(金馹孫)이 이곳 경치에 매혹되어 '열걸음을 걷다 아홉 번을 되돌아볼 만큼 절경이다'고 칭찬하면서 붙여진 이름. 단(丹)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가을이었던 듯하다.
구담봉에서 충주호를 내려다본다. 암송(岩松)과 산자락의 흰눈, 옥빛 호수의 조합은 말 그대로 한폭의 동양화. 퇴계가 왜 이곳을 자주 찾았는지 물음에 대한 답이다. 가끔씩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유람선이 적막을 깬다. 구담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면 구담북봉에 이른다. 북봉 등산로는 호수가장자리를 끼고 있다. 소나무 숲길에서 에메랄드빛 호수를 바라보노라면 자연이 펼쳐 놓은 원색의 대비에 눈이 아찔해진다. 구담북봉과 옥순봉은 등산로로 연결된다. 길이 희미하지만 소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옥순봉과 만날 수 있다. 사잇길이 두세번 나오는데 모두 오른쪽 길을 택해 오르면 된다.
□정선'김홍도도 이곳 찾아 작품 담아
두 곳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구담봉은 장회나루쪽 호반 풍경이 아름답고, 옥순봉은 송림과 기암괴석과의 조화가 볼만하다. 한국산수화의 대가인 정선도 이곳을 찾아 화폭에 비경을 담았고 김홍도도 화구(畵具)를 꾸려 자주 단양에 들렀다. 화공(畵工)으로서 묘사의 한계를 느낀 걸까. 단원은 경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죄책에 시달렸다. 인근의 사인암을 찾았을 때도 열흘 동안 붓방아만 찧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병진년서첩'에 나오는 '옥순봉도'도 나중에 상상력을 동원해 겨우 완성했다고 전한다. 하긴 실물을 그대로 옮겨주는 카메라를 들고도 형상화의 한계를 실감한다. 바위의 질감을 살리면 소나무 자태가 걸리고 암송에 겨우 초점을 맞추니 호수의 물빛이 울고'''.
드디어 옥순봉이다. 산행시작 3시간 만에 정상석이다. 퇴계의 평가답게 기암기봉과 노송들의 배열이 일품이다. 등산객들은 호수, 벼랑을 배경삼아 기념 사진촬영에 분주하다.
이제 일행은 하산 길로 접어든다. 등산길이 호반을 끼고 도는 호수산행이라면 하산 길은 동네 약수터를 걷듯 가벼운 솔밭산행이다. 망막을 자극하던 호수의 색감(色感)에서 비켜서니 이제야 산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눈에 덮인 산들이 한없이 정겹다. 가은산이 산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채 물속에 잠겼고 멀리 월악산의 준령도 한걸음에 닿을 듯 가깝다.
구담'옥순 삼거리는 하산 길에 또 만난다. 저녁 햇살을 받은 충주호가 어린(魚鱗)처럼 반짝인다. 오른쪽 장회나루엔 유람선이 바삐 드나든다. 충주호는 진흥왕이 소백산을 넘어 고구려와 패권을 다툴 적에 하림궁(河臨宮)을 짓고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통일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던 곳.
□퇴계' 기생 두향 함께 풍류 즐겼던 곳
충주호의 문턱 장회나루는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로맨스 현장. 48세의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17세의 관기 두향과 장회나루일대에서 시문을 주고받으며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퇴계가 단양에 온 지 10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발령 나면서 두 사람은 이별을 맞았다. 퇴계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했던 두향은 구담봉 근처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고 나중에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하자 두향은 강선대에서 투신했다고 전한다. 누구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상상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이 일대에는 두 사람의 로맨스 동선을 따라 많은 유적과 일화들이 흩어져 있다.
하산 길에 다시 들러 본 장회나루. 비록 가야금 소리가 울리는 돛배는 찾을 수 없지만 호반을 오가는 유람선에서 당시 풍취를 어림한다. 유람선에선 퇴계와 두향의 로맨스를 설명하는 안내원의 마이크 소리가 소란스럽다. 퇴계도 뱃전에서 입담 좋은 뱃사공의 수다를 들었을 것이다.
배들은 겨울 호수의 찬바람을 뚫고 옛 물길을 따라 바삐 오간다. 수백 년 시차를 넘어 현장의 풍류는 그대로다. 노(櫓)소리가 우렁찬 기계음으로 바뀌고 기생들의 가야금소리가 디스코메들리로 바뀐 것 외에는'''.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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