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집 '나무 물고기'에는 테이블이 5개밖에 없다. 널찍한 방에 두 사람이 앉으면 끝이다. 작은 방마다 테이블이 한 개씩 있어 독립된 공간이 확보돼 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이 있어도 채경희 사장은 테이블을 더 늘릴 계획이 없다.
"살아가는 데에 여백이 있어야지요. 이런 공간이 있어야 저 역시 숨 쉴 수 있을 것 같고요."
음식점 운영 경력이 전혀 없던 채 사장은 2년 전 남편의 퇴직과 함께 '뭘 할까' 고민하다가 덜컥 식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사람들은 주로 강한 양념 맛으로 먹잖아요. 재료가 가진 본질의 맛을 보여주는 그런 밥집을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요."
채 사장이 직접 만들어 내는 소박하고 담백한 한정식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집의 특징은 재료는 평범하지만 채 사장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들어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반찬들이 등장한다.
식사 메뉴는 현재 한 가지. 1만3천원 정식에는 표고버섯깐풍기, 수육, 모듬전, 샐러드 등 전식에 제철식품을 이용한 10여가지 반찬이 나온다. 출시 예정인 1만8천원 코스에는 연잎에 싼 훈제오리가 더해질 계획이다.
'표고버섯깐풍기'는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맛이 독특하다. 표고버섯을 튀겨내 여기에다 직접 만든 고추기름을 소스로 끼얹는다. 바삭하고 고소한 버섯의 맛과 매콤한 고추기름소스가 어우러져 자꾸 손이 간다. 표고버섯 다시마전, 야콘과 자색고구마 샐러드도 독특하다.
이 집은 유독 장아찌류가 많다. 오이'연근장아찌는 기본이고, 두부장아찌, 가지장아찌 등이 있다. 두부는 얇게 기름에 부친 후 뜨거운 소스를 부어 장아찌를 담그고, 가지는 말리고 찌기를 반복한 후 장아찌로 만든다.
음식들은 간이 적은 편이고 자극적이지 않다. 마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생강으로 향을 낸다. 채 사장은 음식에 있어서도 '인연'을 중시한다. '나에게 온 식재료는 인연이 닿아있기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 장아찌를 담았던 간장을 음식에 활용해 몸에도 좋고, 재료 손실도 줄인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싱겁게 먹고 싶어 하면서 정작 단맛과 짠맛을 선호하고, 조미료는 싫다고 하면서 맛있는 맛을 원하죠. 이처럼 생각과 혀가 다른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는 게 어렵죠."
식당 납품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만드는 대로 재료를 사용하니 손님들은 '집밥 같다'며 만족해한다.
'음식하는 일이 노동이 되면 안 된다'는 채 사장은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 "예약제가 정착이 돼야 신선한 재료로 손실 없이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손님들도 남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돼요. 식당 전반에 예약제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나무 물고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림들. 권정찬, 백낙종, 성백주 등 작가들의 작품은 먹을거리에 앞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만 불릴 게 아니라 눈도 즐겁게 하시라'는 채 사장의 배려다. 아예 갤러리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그곳에는 도예작품과 천연염색한 스카프 등 전시 작품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릇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청도에서 활동 중인 젊은 도예가의 작품으로 식기를 통일했다. 물컵 하나에 2만원이 넘는다니, 고급스러운 상차림이다. 수저는 무형문화재 징장이 만든 방짜유기제품이다. 채 사장은 "1만3천원에도 대접받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철학이 있는 식당이 이처럼 하나 둘씩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집은 찻집도 겸하고 있다. 정식 1만3천원, 핫케이크 6천원, 각종 차 4천~6천원대. 053)624-5597.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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