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계 '할배' 김석구(빅 박스 당구장 운영)씨는 고교 시절(경북고) 당구에 입문해 1965년에 이미 당구수지 1천이었다. 당구에 빠져 지내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50년이 지났지만 당구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공 보낼 선을 머리로 그려야 한다. 머리를 쓰니 치매 예방에 좋고, 내 그림대로 공이 굴러가면 스트레스가 해소돼 좋다.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좋다."
당구 예찬론자인 그는 당구가 건강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당구대를 한 바퀴 돌면 약 14m가 되고, 2,3시간 부지런히 당구를 치면 5km 이상 걷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병원장인 친구의 말을 인용해 '공을 치기 위해 허리를 폈다가 접는 동작을 반복해야 하니까 웬만한 허리병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김석구씨는 젊은 시절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놀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잡기는 모조리 다 할 줄 알고, 즐겼다고 했다. 마작, 화투, 골프, 당구, '훌라', 바둑…. 그 중에서도 당구가 제일이라고 했다.
그는 1980년에 당구장을 열어 당구대 32개를 갖춘 대형 당구장 2개를 운영했지만, 몇 가지 이유로 당구장을 접고 10년 정도 무역 사업을 하기도 했다. 십 수 년 전 취미삼아 다시 시작한 당구장 운영이 용돈 벌이도 돼 좋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당구가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 때로 올해로 101년 됐다. 현재 당구 인구는 대략 1천200만 명. 남자들 중 절반 가까이가 당구를 칠 줄 안다. 그러니 당구장에 오는 손님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고, 직업도 가지각색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도 있고, 수준급인 사람도 있고, 하루에 한번 당구장에 안 들르면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
김석구씨의 '빅 박스' 당구장은 대구에서 유명한 당구장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거의 선수급이다. 실제 선수들(대한당구연맹 소속 회원)도 많다. 골프나 볼링처럼 자신의 큐를 빅 박스 당구장 보관함에 두고 정기적으로 당구를 치는 이른바 마니아도 100명 가까이 된다. 그들은 자기 돈으로 산 비싼 큐를 쓰고, 당구대도 대대(큰 당구대)를 애용한다. 보통 당구장에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큐는 3만원대 제품인데, 이들 마니아들이 갖고 있는 큐는 9만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른다. 100만원이 넘는 큐도 있다.
당구장 손님도 많이 변했다. 1960년대, 70년대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 자녀들이 고급 오락으로 혹은 동네 건달이나 소매치기들이 시간 때우기로 당구를 많이 쳤다. 80년대, 90년대는 대학생들이 많이 쳤다. 2000년대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 당구장을 찾는 사람은 비교적 적다. 대학 시절 당구장이 아니라 PC방을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요즘 당구장을 찾는 손님들은 대체로 성인들이다. 낮에는 자영업자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고, 밤에는 퇴근한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김석구씨는 인터뷰 하는 동안 담배를 많이 피웠다. 하루에 2갑 이상을 피운다고 했다.
'건강에 해로울 텐데요….'
"내 친구 중에 병원장이 있는데 골초다. 담배가 좋은 거는 아니겠지만, 담배가 넘어갈 때까지는 피워도 된다. 그런데 담배 맛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되면 끊어야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가봐야 한다. 담배를 못 피울 정도면 몸에 이상이 있는 거다."
김석구씨의 이야기는 궤변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그는 건강해 보였다. 어디에도 애달프게 얽매이지 않는 듯한 태도와 연방 허허 웃는 얼굴에 병이 들어올 자리는 없어 보였다.
"(당구에 빠져 지내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래서) 학교 동기들처럼 출세는 못했지만, 즐거우니 됐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밥 굶지 않으니 됐고, 집사람이나 친구들한테 손 안 벌리니 됐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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