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거 울 / 구 석 본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리고

로션을 가볍게 바르고는 다시 웃는다

웃음이 두 번 죽지만 남자는 여전히 보지 못한다

이번에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린다

남자는 쌓이고 쌓인

그들의 죽음을, 남자의 죽음을, 오늘의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남자가 떠난 후,

시취(尸臭)가 향수처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거울 속에는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

속속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음은 일상에 미만해 있다. 일상의 죽음은 그렇게 거울 속 허상에게도 검은 손아귀를 내민 셈이다. 가히 '죽음의 죽음'이라 할 사건이 우리가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웃음'이 죽고, '좋은 아침'도 죽었다. 그가 부는 휘파람마저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 모든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난다. 그는 이 모든 죽음의 근원이자 이유를 알지 못하고 떠나지만, 우리는 그 답을 시의 결미에서 보게 된다. 이 모든 죽음은, 그러니까 모든 것이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라는 점이 근본 이유이다. 즉, 실체는 이미 죽어 부재하며, 거울 속 같은 허상들만 속속 살아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매일 죽음처럼 반복하는 일상이라는 전언이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연상되는 시편이다.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재선거 선언을 촉구하며, 6·3 지방선거에서의 부정선거 참사와 관련하여 이재명 대통령과 선관위 책...
대구경북 경제는 장기 침체 속에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지난해 45조4천억...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가변축을 장착한 대형 화물차와 특수차의 안전 점검을 연 1회 실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표하며, 이는 지난해 경부고속도...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