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새로운 취업 빙하기가 찾아왔다. 버블 경제 붕괴 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일본에서는 전후 최악의 취업난이 계속되었다. 경기 회복으로 일시적으로 고용이 증가했으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작년부터 본격적인 취업난에 빠져있다. 한국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청년실업자 문제로 심각하다.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1985년 선진 5개국 회의에서 결정한 플라자 합의로 급격한 엔고(円高)가 진행되었다. 거품 경제의 시작이다. 당시는 회사에 면접만 가도 현금이나 국내 여행권을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이 10개 이상의 회사로부터 내정을 받을 정도였기 때문에 회사도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진 후 장기 불황 속에서 그들은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연공서열제 하에서 그들은 중간 간부 관리직이 될 나이였으나, 대거 입사를 한 그들에게는 자리가 없었고, 회사는 그들을 추방했다. 거품과 불황의 시대를 겪으면서 그들은 천국과 지옥을 맛보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도 취업난이 계속되었다. 주위에는 100번이나 입사 원서를 내고도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나도 대학 3학년 후반부터 정장을 입고 몇몇 회사의 취업설명회에 갔다. 설명회장에 가는 동안에 회사사람들이 지켜본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면서 걸었던 기억이 있다. 면접관이 좋아할 옷의 색깔과 모양, 헤어스타일, 화장 등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설명회에 모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세 번 설명회에 다녀온 후 취직을 포기했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전향을 한 셈이다.
일본 대학생은 아르바이트에 몰두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일단 입학하고 나면 쉽게 졸업할 수 있는 일본의 교육 시스템이 '대학은 노는 곳'이라는 관념을 만들었다. 달콤한 캠퍼스 생활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난에 부닥친 학생들에게 쓴 좌절감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일본의 감각으로 한국의 대학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많은 학생들을 보고 놀랐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책상 위에는 교과서 등이 쌓여있고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공무원 시험이나 TOEIC 등 자격시험을 목표로 휴일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은 볼 때마다 감동적이었다. 대학에서도 계속되는 경쟁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친하게 지낸 학생들도 취업난에 직면해 있다. 휴학, 유급, 대학원 진학, 유학이라는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대학 어학당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 마지막 수업에서 '기업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나눠주고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본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결정하는 자신의 가치"라고 정리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는 그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왜 마지막 수업에서 일부러 우울한 주제를 선택했습니까"라는 학생의 반문에 멈칫했다. 그들이 안고 있는 중압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취직을 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취업 때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으며 연령과 성별, 국적도 묻지 않는다. 취업차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아직도 학력과 외모를 중시하고 부모의 직업을 묻는 등 차별을 반복한다. 불경기를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면접관에 의해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타인과의 차이여야 한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 무의미한 시대에 자기의 가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힘이다.
요코야마 유카 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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