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 읽기] 결단의 본질: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설명

그램 엘리슨 외 저(1999, 롱맨)

『결단의 본질』은 정부 정책의 결정 과정을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다양한 관점으로부터의 복합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1971년 발간된 이래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명저로 인정받아 왔다. 저자 그램 엘리슨은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정책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정치학자로, 새롭게 공개된 사료를 바탕으로 1999년 개정판을 발간한다.

이 책에서 사례연구로 다루고 있는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10월 14일에 시작되어 2주 후인 10월 28일에 종료된 냉전 시기 핵 충돌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U-2 정찰기는 쿠바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미국은 당시 5천기 이상의 핵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300기 남짓의 소련에 대해 절대적인 핵 우위의 상황에 있었지만 자신의 뒷 마당에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 가능한 핵 탄도 미사일의 배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사일 기지 건설 중단 요구를 소련이 순순히 들어줄 가능성은 희박했으며 최악의 경우 국지적 혹은 전면적인 핵전쟁 발발을 감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 대안, 예컨대 외교 통로를 통한 대 소련 압박, 건설 중인 미사일 기지에 대한 공중 타격, 전면적인 군사적 침공 등을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쿠바로 통하는 공해와 영공을 봉쇄하는 조치를 선택한다.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를 골자로 하는 대 국민 담화를 발표하지만 여전히 해상 봉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는 약했다. 케네디 행정부는 따라서 해상 봉쇄와 함께 쿠바 침공 계획을 작성하고 소련의 군사적 대응 시 소련 본토에 대한 핵 타격을 포함하는 전면전에 대비한 계획 역시 마련한다. 이후 핵 전쟁의 파국을 막기 위한 케네디-흐루시초프 간 비밀 협상이 진행되고 쿠바에서의 소련 미사일 철수의 대가로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불침공 및 이태리와 터키에 설치된 미국 미사일의 철수를 약속한다.

엘리슨에 따르면 케네디 행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결정은 가능한 모든 정책 대안 및 목표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통해 이루어진 '합리적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다. 물론 핵전쟁으로 인한 소위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두려움으로 인해 쿠바에 대한 봉쇄가 전면적인 핵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은 가능했지만 그것이 케네디 행정부의 결정을 완전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공격 실패에 이은 또 다른 정치적 악재로 196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컸으며 따라서 케네디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 해결과 같은 미온적인 대안을 처음부터 선택에서 제외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인 판단으로 냉철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공중 선제타격을 지지하는 CIA국장이나 공군 사령관에 대한 신뢰보다 봉쇄를 지지했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나 연설문 작성자이자 특별고문이었던 테드 소렌젠에 대한 케네디 대통령의 신뢰가 훨씬 강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정부의 정책 결정이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의 핵심 참모그룹에서의 친소관계나 신뢰관계가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예증이라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판이한, 새로운 안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정책 결정권자의 합리적 판단과 결연한 의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케네디나 엘리슨의 주장처럼 결단의 본질이 때론 불가해하고 복잡다단한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핵심 정책결정권자의 결단이 정파적 이해관계나 정책결정권자를 둘러싼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 지켜야하는 우리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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