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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조 들여다보기]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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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무명씨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

서리 맞은 전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 산 바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어 내닫다가

그 아래 도로 자빠지거구나 /

모처럼 날쌘 낼세 망정 행여 둔자런들 어혈(瘀血)질 번하괘라.

사설시조다. 상황의 묘사나 감정의 표출이 평시조로는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사설시조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두꺼비, 전파리, 백송골의 특성을 신분 계층에 비유하여 계층 간의 위화감을 폭로한 작품이다.

한 눈이 멀고 한 다리를 저는 두꺼비라면 그도 별 힘이 없는 계층이지만, 서리 맞은 전파리는 아주 보잘 것 없고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계층이다. 그러니까 힘없는 백성쯤 되겠다. 백송골은 중앙 관리 계층이다. 전파리는 힘없는 백성, 두꺼비는 서민과 권력자의 중간쯤에서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파렴치한 지방관리들, 백송골은 중앙 권력을 가진 관리들에 비유된 것이다.

이런 비유를 염두에 현대어로 풀어 읽으면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가 서리를 맞은 전파리를 한 마리를 잡아 물고 두엄 위에 뛰어올라/ 건너 산을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으므로 가슴이 섬뜩하여 펄쩍 뛰어 내리다가 두엄 아래로 나자빠졌구나 / 아차! 날랜 나이기에 망정이지 둔한 사람이었다면 피멍이 들 뻔 하였구나'가 된다.

어이없어 웃음이 나온다. 그게 사설시조의 맛이다. 착취와 억눌림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백성들의 생활이 고발되었다. 권력자의 수탈과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익살스런 표현을 써서 폭로한 것이다.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아 시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은 그 옛날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적잖이 생기고 있다. 민주주의가 되어 선거를 통해 의원들을 뽑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유권자와 출마자 그리고 공천자들을 여기에 빗대면 맞지 않는 것인가. 꼭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이제 당선자들, 어쨌든 금배지 비슷한 것 달고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 옛시조 한 편 곰곰이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그간 '옛시조 들여다보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이여! 그대들의 삶에 좋은 일 많으시기를….

문무학(시조시인·대구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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