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의 생애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사와도 닮아 있다. 변변한 어린 시절 사진 한 장 없을 정도의 어려움을 딛고 실력 하나로 성장, 경제부총리와 여당 원내대표까지 오르는 실력과 경험을 쌓았다. 그가 이제 자신의 뿌리인 대구의 '경제 구원투수' 출사표를 던졌다.
◆가난했던 대구 청년, 경제관료 정점까지
추 후보는 1960년 경북 달성군 다사면(현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대구수창국민학교, 평리중학교,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온전히 대구의 품에서 성장했다.
추 후보는 이 시기, 남아 있는 사진이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추 후보는 "어머니께서 돼지껍데기나 내장 같은 부속물을 사오시는 날이 집에서는 큰 잔칫날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양대창 등이 고급요리가 된 시절을 맞아 격세지감은 물론 살아온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대구를 떠난 것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 '79학번'으로 입학하면서다. 무역 상사맨이 돼 세계를 누비는 경영자의 꿈을 꿨다.
그러나 곧 '국가경영이 세계경영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고, 공직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사찰에서의 공부를 여름 휴양 겸 떠나게 됐는데 곧장 1차 시험에 합격했다. 3학년이던 1981년 25회 행정고시에 최종 합격했고, 1983년 대학 졸업 직후 총무처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약 30년 간 경제관료로서의 핵심 요직들을 거치며 금융분야는 물론이고 실물경제, 국제경험을 두루 섭렵했다.
1987년 9월에는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EPB) 물가정책국 물가총괄과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경제관료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경제관료로서 재정경제원과 재정경제부에서 최연소 승진 기록을 갈아치우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6년 2월에는 서기관으로 승진해 재정경제원 종합정책국에서 근무하다 1998년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에 파견됐으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입성했다.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 일하다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겼으며, 1년 남짓 근무하다가 1999년 6월 세계은행에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파견됐다.
2002년 7월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 행정법무담당관으로 복귀한 뒤 은행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 등 금융 분야 핵심 보직을 거쳤다. 이후 국내 금융정책이 금융위원회로 이관된 후에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5월에는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겸 비상경제상황실장으로 임명돼,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후속 수습 대책을 지휘했다. 2011년 9월엔 차관급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3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 올라 주요 경제정책을 설계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2017년까지 잠재성장률 4%와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그가 주도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7월, 장관급인 제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국무조정실장으로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보좌관들과 오찬간담회를 열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홍원, 이완구, 황교안 등 박근혜 정부의 모든 국무총리들을 보좌하며 '롱런'했다.
◆정치인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로
30년 이상 경제정책과 금융정책을 두루 섭렵하며 장관급으로 공직을 마친 그는 곧장 정계에 입문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대구 달성군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 다시 지역의 품으로 돌아오는 동시에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선에 섰다.
20대 국회 첫해에는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중 유일하게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됐고, 2017년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내는 등 당의 중심부에서 역할을 해왔다. 특기를 살려 기획재정위원회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특별위원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각종 특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달성군에서 공천을 받았고 67.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 이하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하로 유지하는 재정준칙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한 재정건전성 훼손을 차단하고자 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에는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올랐다. 기재부 내부 업무 효율을 강조하면서 불필요한 회의와 보고서를 줄였고, 호평을 받았다.
현직 부총리로는 이례적으로 기재부 직원들이 뽑은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돼 직원들과의 소통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2005년 은행제도과장 시절을 비롯해 모두 세 차례 이름을 올려 이 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23년 연말 부총리직에서 퇴임, 이듬해 총선에서 75.3%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22대 총선 국민의힘 당선인들 중 유일하게 10만표 이상을 획득한 사례였다.
2024년 5월에는 총선 결과 만들어진 극단적 여소야대 지형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2명 중 70명의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및 정치적 갈등이 불거진 각종 입법 현안 등 여러 난제를 두고 소수여당 대표로 분투해 왔다.
지난해 연말 지역 중진 의원 중 최초로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대구경제 구원투수'로 등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인 경선' 끝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되며 본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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