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번역지원사로 일하는 후수니 야티(36)씨는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섬 발렘방시가 고향이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인 1995년에 산업연수생으로 구미에 첫 발을 들였으니 구미생활이 벌써 16년째다. 외롭고 힘든 연수생 시절에 만나 사랑을 나눈 지금의 남편과의 우여곡절 결혼 끝에 알콩달콩 살아가는 야티씨는 경북 곳곳에 흩어진 2천여 명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이주여성들의 대변자이자 자원봉사자로 알려져 있다.
먼 이국 땅에 와서 그녀가 가장 행복하게 하고 있는 지금의 일을 처음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다. 낯설고 물설고 말도 통하지 않은 이방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 서러움을 겪고 있는 야티씨에게 자신 역시 제주도에서 돈 벌러 구미로 오게 된 남편은 나라만 틀릴 뿐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이다.
남편은 타국생활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누구보다도 감싸 안아줬고 자신과 똑같이 각종 어려움에 처한 인도네시아 출신 동포들의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모국인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나설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결혼으로 발전하기까지는 또 다른 시련이 뒤따랐다. 바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야티씨의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은 것.
그래도 남편은 산업연수생 기간을 다 보내고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야티씨를 따라나섰다. 무조건 야티씨의 집에 가서 결혼해줄 것을 허락해달라는 남편에게 돌아오는 것은 부모님의 완강한 거부였다.
하지만 야티씨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마을 원로회의에 둘의 결혼여부를 물었고 마을 어르신들이 '맞아죽을 각오까지 하며 인도네시아까지 따라왔다면 그 용기가 대단하다' 며 '분명 평생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는 현명한 판단을 해줌으로써 극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둘의 결혼은 야티씨 마을에서 처음 하는 국제결혼식이 됐으며 야티씨와 남편은 일주일간 친정에서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마치고 다시 구미로 돌아왔다. 1998년의 일이다. 지금도 야티씨는 남편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자신을 늘 지켜주고 도와주는 남편과 같이 있는 구미는 그래서 제2의 고향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지금은 구미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취업해 예전보다 나은 봉사를 할 수 있게 돼서 행복하다는 야티씨지만 처음 모국인들을 위한 일을 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자신도 이국에서의 설움을 경험했기에 어려움에 처한 모국인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 어디나 달려가서 도움의 손길을 전해왔지만 고마운 남편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동포들이 간혹 있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남편사랑이 지극한 한국의 여느 아내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려운 고향 부모님 생활비 송금을 위해 결혼 뒤에도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야티씨는 빠듯한 형편에도 임금을 못 받거나, 직장에서 쫓겨나 갈 곳 없거나, 병들거나, 교통사고 당하거나, 말이 통하지 않거나, 한국인에게 피해를 당해도 말 못하는 딱한 처지에 몰린 동포들을 돕는데 앞장서왔다.
이런 야티씨를 만들어낸 것은 남편 말고도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돈이 없으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이나 잠자리라도 주라"고 했던 아버지의 생전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다섯 형제 중에서도 야티씨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까지 따라갔던 남편을 받아준 분이 바로 아버지인 까닭도 있다.
지난 2006년 병으로 고생하시다 딸집에 한 번도 와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야티씨는 "어려운 형편으로 딸이 사는 모습을 못 보여줘 너무 가슴 아프다"면서도 "아버지 말씀처럼 어려운 동포들을 돕고 구미를 위하는데 힘쓰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이제는 구미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족들의 진정한 친구로 바쁘게 살아가는 야티씨의 모습에서 어엿한 구미새댁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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