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체의학 이야기] (6) 쿤달리니가 각성되어야 하는 까닭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적 세계에 적응하는 삶의 시발점

필자는 약 5년 전에 우연히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같이 모일 기회가 있어서 얘기하다가 척추손상을 입고 기형이 왔는데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회복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많은 시간 집중적으로 그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충청도 계룡산 자락에 기거하고 있는데 그와 이야기한 내용 가운데 쿤달리니의 각성으로 자연치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쿤달리니의 각성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다.

◆쿤달리니의 개념

의사가 되려면 의학을 전공해야 하고 법률가가 되려면 법률학을 공부하여야 한다. 물론 의학이나 법률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모두 의사가 되고 법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시험과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그 자격이 갖추어진다. 마찬가지로 초월자나 성자가 되어 인간 고해를 훌쩍 뛰어넘자고 한다면 우선 쿤달리니를 각성하는 것이 절대적인 자격 요건이다. 현재 인류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종교의 발원이라고 할 힌두교의 요가철학은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도교는 쿤달리니와 체계가 거의 일치하는 현상을 소주천(小周天)이라고 하며, 이에 각성하면 영생불사하며 진인 또는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교나 천주교에서는 쿤달리니의 각성이라고 체계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참선이나 묵상 또는 관상이라는 이름들로 명상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은 힌두교나 도가(道家)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현존하고 있는 위대한 종교들은 내면에서는 한결같이 쿤달리니의 각성 효과를 희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쿤달리니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쉽게 설명한다면 사람은 물속이나 우주공간에서 단 한순간도 버티기 어렵다. 그렇지만 스쿠버 훈련이나 우주비행 훈련을 마치고 충분한 장비를 갖춘다면 육체가 생존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는 환경이지만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물질의 모든 현상을 눈, 귀, 코 등의 감각기관으로 접촉하고 그 접촉한 내용을 생각으로 거르면서 대응해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면서 기능을 발휘하는 감각과 의식으로 물질세계에 적응해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육체적 삶과 달리 영적 삶의 적응력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물질세계에 알맞도록 짜여진 감각과 의식의 현상적인 구조로는 영적 또는 정신세계에서 한순간도 견디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물속이나 우주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과 장비가 필요하듯이 영적 세계에 순응하도록 육체와 정신을 변혁시켜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명상이나 기도 또는 헌신 등의 경건한 수행으로 영적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마치 비행기를 타 보았다고 하여 우주유영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육체에는 이 영적 세계에 돌입하여 적응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 장치가 가동돼 제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영적 세계에 진입하고 이에 적응하게 된다. 육체의 공간 속에 내장된 장치가 바로 쿤달리니 또는 소주천이라고 불리는 영적 진화의 체계이다. 쿤달리니의 각성은 바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이며 동시에 영적 삶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종교는 명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명상은 쿤달리니의 각성 위에서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쿤달리니 각성 방법

요가철학과 도교에서 밝히고 있는 쿤달리니 또는 소주천의 각성 방법은 인류문명 발상지인 인도와 중국에서 문명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방법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 최고의 지성들이 자신의 간절한 소망과 고통, 그리고 인내를 담은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스승들과 종교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만들어 놓은 이 각성의 비법에 따라 수행자들이 수행하여 각성하게 되었다면 쿤달리니는 일반화되고 상식화되어 의문이나 이론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어떠한 각성 비법을 채택하여 수련한다고 해도 성공하는 비율이 거의 제로(0) 수준에 가깝다는 점이다.

성자들이 스스로 혹은 제자들을 통해 남긴 경전들을 보면 이런 저런 세상사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열반이나 절대자와의 합일과 같은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성자가 걸어갔던 수행의 길은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지만 결국 그 성취는 자신만의 선택적인 특혜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사티아난다 사라스와티는 "쿤달리니의 각성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각성만 하면 성자의 길로 접어든다"고 주장하였다.

이제는 쿤달리니 각성이 더 이상 요가나 신비가, 또는 출가한 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큰 지혜의 눈을 뜨게 되고 창조력이 샘솟으며, 인간 진화의 근원이라는 쿤달리니의 수련법이 보급되어 각성자가 늘어간다면, 과학보다 현저하게 뒤처진 정신적'종교적 영역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엽(대구 보비스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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