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어느 날의 삽화

시내 호텔 주차장에서다. 입구부터 북적대는 토요일 오후였다. 주차하기 위해 지하로 한층 한층 내려갔다. 후회스러웠다. 이런 복잡한 곳엔 차를 가져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다음 행선지에 차를 이용해야 할 일이 있어 부득이 가져온 것이다. 주차하기도 쉽고 부담이 적은 경차다.

지하 3층까지 내려가다 보니 마침 한 군데 빈 자리가 보였다. 규격에 맞게 레일이 설치된 주차시설 쪽이 아니다. 그 앞의 빈 공간이었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자리를 찾은 것이다. 앞에는 두 대의 차가 주차해 있었다. 그 뒤에 세우면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인가. 콧노래를 부르며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두 명의 주차요원이었다.

"이곳에 세우면 안 됩니다. 저곳에 넣으세요."

뛰어오느라 숨을 헐떡인 탓인가.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그 남자는 기계식인 주차공간을 가리켰다. 나도 그곳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차하기 쉬운 빈 공간을 찾았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나는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물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속으로 못마땅했지만 그 요원과 다툴 수는 없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운전 경력은 오래지만 아직도 내게 주차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핸들을 조금씩 옮겨가며 그들이 지정해주는 곳에 차를 세웠다. 다른 한편으론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다. 빈 자리를 그냥 두고 왜 내 차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걸까. 쾅ㅡ. 애꿎은 차문을 세게 닫았다. 서운한 마음을 잠재우며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분통 터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주차하고 싶어 했던 빈 자리로 들어오는 차가 있었다.

최신형 벤츠다. 주차요원의 안내까지 받으며 여유 있게 주차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짧은 치마 아래 날씬한 각선미가 돋보이는 흰 다리와 굽 높은 구두.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젊은 나이에 경제적인 윤택을 누린 것인가. 나는 한동안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 젊은 여자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 이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외제차를 타려고 하는구나. 씁쓸한 웃음이 돌았다.

내 소형차는 수난이 많다. 지금은 유치원생 엄마가 된 막내의 대학 시절에 구입한 차다. 오래된 차라 부담이 적다. 그래서 즐겨 이 차를 이용한다. 누가 와서 부딪쳐 흠집이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차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다.

언젠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앞에 잠깐 차를 세워두었을 때였다. 겨울밤이었다. 가족이 다 모인 회식이라 여러 대의 차가 필요했다. 내 차도 동원된 것이다. 빨리 식사하고 차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눈은 연방 창 너머 차 쪽이었다. 허겁지겁 식사를 끝냈다. 막 식당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내 차의 앞바퀴가 들려 견인차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 잠깐만 하고 외쳤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남자는 그대로 출발해버렸다. 눈앞에서 끌려가는 차를 바라보며 느끼던 막막함과 씁쓸함. 그때도 지금처럼 무엇인가 억울한 느낌이었다.

물론 잘못한 것은 나다. 위법을 했으니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손해 보는 듯한 생각은 왜일까. 똑같이 주차해 있는 다른 차들은 그대로 있다. 하필이면 내 차만 끌려가는 것에의 섭섭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한낮에 견인차에 끌려가는 자동차를 볼 때가 있다. 사마귀처럼 앞바퀴를 하늘을 향해 쳐들고 매달려가는 모습. 웃음이 돈다. 눈여겨보면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중'소형차들이다. 외제차를 비롯한 대형 고급차들은 보기 어렵다. 그런 차들은 그만큼 법을 잘 지킨다는 얘긴가. 나 혼자만의 편견이기를 빌어본다.

요즈음 모 자동차 회사의 1천600cc급 차가 인기라고 한다. 녹색성장정책을 기획하는 실세장관들도 애용한다던가. 경차에 관한 뉴스가 눈길을 끈다. 아 언제쯤일까. 오래된 소형차도 다른 차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날이. 그날을 기다려 본다.

허정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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