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늦은 아침 '브런치' 외식 새 유행

젊은 세대 열풍 들여다 보니…

'브런치(brunch)'는 '아침을 겸한 점심'을 뜻하는 용어다.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밥'을 의미하는 우리의 '아점'과 같은 말이다. 보통 식단이 단출하게 구성돼 있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간단하게 늦은 아침을 해결하는 용도로 등장한 브런치가 한국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적인 브런치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브런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으며 브런치 카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브런치 문화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외식업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브런치 문화를 들여다 봤다.

◆브런치 외식업계 변방에서 주류로

브런치 문화의 확산에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컸다. 주인공들이 수다를 떨며 브런치를 먹는 모습은 하나의 로망이 되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중반 서울 이태원에서 시작된 브런치 카페 붐은 불과 몇년 사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브런치 애호가들을 양산하고 있다.

브런치 대중화가 본격화 되면서 외식업체들의 브런치 메뉴 출시도 잇따랐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커피전문점. 커피전문점들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커피와 빵을 묶은 브런치 메뉴로 포화 상태인 커피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10여 종의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탐 앤 탐스도 구운 식빵 위에 생크림을 얹고 시럽과 시나몬 파우더로 토핑한 허니버터 브레드 등의 사이드 메뉴를 커피와 조합해 브런치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제빵업계도 브런치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최근 직영매장을 중심으로 브런치 세트 메뉴를 출시했다.

◆대구의 브런치 카페들

브런치 열풍은 대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년 사이 브런치 메뉴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크게 늘었다.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헬베티카', 중구 공평동의 '데일리 브레드'는 브런치 카페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헬베티카'의 경우 7천원대에서 2만원대의 다양한 브런치 메뉴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데일리 브레드'에서는 훈제연어 오믈렛, 버섯 오믈렛, 에그베네딕트 등을 브런치로 즐길 수 있다.

이주원(28·여) 씨는 "팬케이크, 소시지, 토스트, 감자튀김, 베이컨 등이 담긴 브런치 더블을 하나 주문하면 2, 3명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와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헬베티카에서 브런치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브런치 카페들은 주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동성로에 집중돼 있지만 시내 외곽에서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남구 봉덕동 캠프워크 인근에 위치한 '하미마미'는 미국식 아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샌드위치와 베이글·오믈렛 세트 등 다양한 아침 메뉴가 준비돼 있어 브런치를 즐기려는 외국인 뿐 아니라 내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박지성 선수의 사진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관련 축구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수성구 만촌동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브런치 메뉴를 만날 수 있다.

한편 노보텔 대구시티센터는 주말과 공휴일 점심 뷔페 시간을 앞당겨 브런치를 제공하고 있다. 평일에는 낮 12시에 문을 여는 뷔페 식당이 주말과 공휴일에는 오전 11시 문을 연다. 시리얼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추가된 것이 브런치 뷔페의 특징. 노보텔 대구시티센터 관계자는 "브런치 문화에 익숙한 외국 손님들이 많이 묵고 있어 개장 때부터 고객 편의 차원에서 주말과 공휴일에 브런치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런치, 음악을 만나다

브런치를 접목시킨 공연도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브런치가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소비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문화와 지식을 충전하는 통로 역할로 진화하고 있는 경우다.

대구백화점은 올 1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오전 11시 대백프라자 10층 대백프라임홀에서 브런치 콘서트인 '박명기의 음악이야기'를 개최하고 있다. 박명기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진행하는 '박명기의 음악이야기'는 2~4명의 음악가들이 출연해 연주를 들려주면 박 전 관장이 해설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관람객들은 대백프라임홀 입구에 마련된 브런치 메뉴(커피·쿠키·프레즐 등)를 접시에 담은 뒤 공연장으로 갖고 들어가 편안하게 음식을 먹으면서 음악을 즐기면 된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시가 20만~30만원 정도의 그림 한점을 경매에 부치는 부대행사도 열린다.

1만원의 저렴한 비용과 음악적 이해를 높여주는 친절한 설명, 기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공연장에서 음식까지 먹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덕분에 '박명기의 음악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90명이 정원이지만 8월 공연때에는 1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부랴부랴 추가 자리를 더 마련해야 했다.

9월 28일 열린 8번째 '박명기의 음악이야기'를 관람한 곽유진(45·여·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씨는 "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빵, 음악가들의 수준 높은 연주, 음악적 지식을 넓혀주는 해설이 어우러진 멋진 공연이라 자주 찾는다. 단돈 만원으로 이만한 호사를 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 기다려질 정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태곤 대구백화점 문화마케팅 과장은 "예술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여유가 공존하는 브런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음악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공연 때마다 객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어 브런치 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아트피아에서도 2007년 7월부터 브런치를 제공하는 마티네 콘서트를 열고 있다. 마티네는 프랑스어 '마탱'(matin·아침)에서 유래된 말로 오전에 열리는 공연을 의미한다. 마티네 콘서트는 매월 둘째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마티네 콘서트 참가자들에게는 샌드위치 2, 3조각과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이 제공된다. 오는 10월 12일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에는 수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출연한다. 티켓 가격은 1인당 브런치 포함 2만원, 브런치 미포함 1만5천원이다.

◆브런치를 둘러싼 비판

'섹스 앤 더 시티'의 브런치 문화와 한국의 브런치 문화는 조금 다르다. 친구들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주말 한 끼 수다를 떨며 브런치를 즐기는 드라마 속 브런치에 비해 한국의 브런치는 옷을 차려 입고 마치 정찬처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브런치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브런치는 일요일 늦은 오전에 즐기는 여가 활동을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 브런치는 평일에 즐기는 '아점'의 경향이 강하다.

한국식으로 진화한 브런치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 중 하나는 바로 가격 거품 논쟁이다. 브런치 메뉴의 경우 보통 싼 것이 5천~6천원이다. 웬만하면 8천~1만원 정도 한다. 비싼 것은 2만원을 넘기는 것도 있다. 이쯤 되면 가볍게 한끼를 해결하는 개념이 아니라 비싼 식사를 하는 셈이다.

또 브런치가 과시적 소비 욕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지영(31·여) 씨는 "서울에 출장을 갔다 브런치가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들렀다. 평일인 데도 사람들이 많아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겨우 음식을 먹었다. 비싼 가격에 비해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브런치를 먹으면서 꼭 된장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브런치 문화에는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과시적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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