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들지 마, 분노의 뇌관! 감히 뒷감당 할 수 있어?

싸움의 禁道, 역린·아킬레스건·컴플렉스

분노를 참지 못해 멱살을 잡는 두 남자. 사진 협조: 동아백화점
분노를 참지 못해 멱살을 잡는 두 남자. 사진 협조: 동아백화점

"상대의 역린(逆鱗)과 아킬레스건을 가급적 건드리지 마라!"

대한민국은 감정의 통제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 걸러 터지는 엽기적인 사건들, 내 주변의 해괴망측한 일들, 하루하루를 녹초로 만드는 과중한 업무, 컨트롤 안 되는 경제 여건 등. 그래도 금도(禁道)는 지키며 사는 게 지혜다.

이 시대에는 그 금도의 지혜 중 으뜸이 아무리 분노가 치밀고, 욱하는 성격이 나와도 그 사람의 역린과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특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서로의 역린과 아킬레스건을 잘 아는 부부, 부모, 형제, 친구, 사제(師弟), 동료, 선·후배 간에 더 폭발력 있게 터질 수 있는 뇌관이나 다름없다.

마음과마음 정신과의원 김성미 원장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용의 턱 밑에 난 거꾸로 선 비늘(역린),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산다면 상대로 인한 큰 화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역린과 아킬레스건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석 같은 존재에 도발…'분노'

영화 '친구'에도 나온다. "니 아버지 뭐하노?" "건달입니다." "뭐! 건달, 그래 이 새끼야! 너거 아버지 건달이라서 좋겠다."

사제지간의 금도가 깨진 것이다. 극중 준석 역을 맡은 배우 유오성은 선생님에게 한참을 얻어터진 후 못 참겠다며 영화 속 친구인 동수(장동건)에게 "에이! 동수야! 가자"며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런 것이다. 부모나 자식, 배우자 등 가족에 대한 욕은 역린이나 다름없다. 어김없이 터지게 마련이다.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들인데 누가 함부로 도발하는가.

이명박 대통령도 이달 2일 영부인에 대한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유례없이 진노·격노했다. 그런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에게 '망나니'라는 극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악용까지 언급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거 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부인이나 아들, 딸 그리고 형에 대한 조사를 본인에 대한 과오보다 참기 힘든 과정으로 여겨 심적 고통이 컸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얘기는 역린으로 후폭풍을 불러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 역시 낙마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인이 사치성 명품을 들고 다닌다고 지적하자, 그 선물에 담긴 사연을 얘기하며 질문한 야당 청문위원에게 사과하라고 도리어 역정을 낸 기억도 오래지 않다.

일반인 역시 마찬가지다.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자식에 대한 욕을 하거나, 아픈 가족사를 들춰내 욕을 하게 되면 그 분노를 삭이기는커녕 그 순간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마음속에 찾아와 달래주지 않고는 참기가 힘든 법이다.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것, '금물'

아무리 화가 나도 그 사안과 관계없는 상대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말은 상대의 전투력을 증강시킨다. 특정 사안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때도 먼저 상대를 자극한 쪽이 다시 수세에 몰리며 엉뚱한 방향으로 주제가 튄다. 그리고 인신공격 심지어 막말, 고성, 욕설, 폭행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회사원 김인섭(27·유통업) 씨는 또래 친구들보다 한 살 어려서 학교에 들어간 탓에 한 번씩 '니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 '한 살 많은 내가 참아야지' 등의 얘기를 심각한 상황에서 들으면 시쳇말로 열 받는다. 김 씨는 "평소 그렇게 화내고 욕을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도 나이 얘기는 기분이 확 상하고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동아백화점 직원 박지숙(26·여) 씨 역시 여자라고 무시할 때는 전투력이 배가된다. 박 씨는 백화점 직원인 탓에 웬만한 일은 웃음으로 넘기는 일에 익숙해 있지만 성적인 차별 등으로 일방적으로 무시를 당할 때는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화를 낸다. 쉽게 설명하면 최근 KBS 개그콘서트 한 코너에 나오는 남하당 대표의 '소는 누가 키워?'에 강하게 항변하는 스타일이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모른다고 인격 모독에 가까운 약점을 건드리는 건 금물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얘기도 귀기울여 볼 만하다. 그는 "정치인으로 반대편에서 공세를 펼치는 것은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인터넷에서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자식을 겨냥해 '니가 그딴 식으로 행세하니까 자식 복이 없지'라는 댓글을 보고 절망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오죽했으면 나 의원이 사이버 모독죄를 국회에 입법 발의했겠는가.

한방으로 정신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도해한의원 김도년 한의사는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것을 더 들춰내 악화시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이 역린이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도 분노가 아닌,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진1. 분노를 참지 못해 멱살을 잡는 두 남자. 사진2.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로 신문지를 던지는 한 남자. 사진3. 역린의 상황에서 분노했을 때의 눈빛을 보여주는 여자. 사진 협조:동아백화점

※역린(逆鱗)='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얘기다. 신화(神話)나 전설(傳說) 속에 등장하는 신비스러운 상상(想像)의 거대한 동물인 용(龍)은 온순하고 사람과 친근한 동물이라 사람이 용에 올라타는 일도 가능했는데, 잘못해서 용의 턱 아래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면 노해서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역린이란 말이 나왔다. 즉 역린이란 '거슬러 난 비늘'이란 뜻으로 군주의 노여움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현대에 와서 역린은 상관(上官)의 노여움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상관을 용에 비유하는 것이 시대적 정서에 부합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순리(順理)를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함이 무난하다.

※아킬레스건=한 개인의 결정적인 약점을 말할 때 흔히 쓰인다. 사전적으로 이 힘줄은 장딴지근(gastrocnemius muscle)과 가자미근(soleus muscle)에서 형성되어 발굽골과 결합돼 있다. 이 힘줄에 의해 발뒤꿈치가 들어올려져서 걷기·달리기·높이뛰기의 기본이 되는 발 동작이 가능하게 된다. 아킬레스건은 신체에서 가장 두껍고 튼튼한 힘줄이다. 신화적으로 보면 더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적의 전사 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그의 발뒤꿈치를 잡은 채로 스틱스강에 담갔기 때문에 모든 신체 부위가 강철처럼 강해졌는데 어머니가 잡은 발뒤꿈치 즉 아킬레스건만이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이 고사(故事)에서 아킬레스건이 '약점'(弱點)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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