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닥으로의 경쟁

연말에 때 아닌 '가격 파괴 운동'이 두 곳에서 일어났다. 먼저 서울의 신설 두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경쟁. 두 업체가 개점 효과를 누리기 위해 3주째 서로 치고받기식 가격 떨어뜨리기 게임을 벌여 특정 라면값이 시장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원가 이하 판매다. 이제는 가격 인하보다도 '누가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해 오래 버틸 것인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이 싸움이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은 롯데마트의 '5천 원 치킨'. 1만 8천 원대에 팔리고 있는 기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해 '가격 파괴'를 무기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이를 '염매 행위'로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결정했다. 공정거래법상 염매 행위란 "다른 사업자를 강제로 배제하기 위해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롯데마트 측은 "프라이드 치킨에 쓰이는 닭과 부자재의 소모량을 미리 계산해서 대량 주문을 통해 원가를 낮춘 것이지 원가 이하 판매는 아니다"고 맞섰다가 부랴부랴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어쨌든 소비자들은 신이 났다. 그런데 같은 출혈 경쟁인데 한쪽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왜 한쪽은 싸움을 접었을까. 롯데마트는 동네 영세업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힘을 앞세운 독단적 행동이 자유 시장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같은 업계에서 가격 경쟁은 피하는 것이 상례다. 가격 경쟁은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이기 때문이다. 품질을 앞세운 위(top)로의 경쟁이 아닌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아래(bottom)로의 기(氣) 싸움에 가깝다. 그렇다면 영리에 밝은 업체들이 왜 서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물고 뜯기식 가격 경쟁을 벌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홍보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겉으로 소비자를 위하는 척 가격 경쟁을 벌이지만 실은 업체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싼 가격에 유혹돼 아침부터 장사진을 치는 시민들 덕분에 유통업체는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홍보된다. 출혈 경쟁이 심할수록 홍보 효과는 더 커지니 의도적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면도 없지 않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의 몫이다. 이런 경쟁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되면 가격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만약 경쟁에서 이겨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다면 가격은 더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닥으로의 경쟁'의 결말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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