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경북을 걷다'를 마친 뒤 새삼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산하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쳤는지 오히려 미안할 정도입니다. 50회에 걸친 시리즈 동안 많은 곳을 둘러봤지만 아직도 경북에는 못다 소개한 아름다운 길이 넘쳐납니다. 제주도도 좋고 지리산도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길을 찾아서 멀리 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에 걸음 하나 더 보태는 것보다 우리 가까운 곳부터 사랑합시다. 그 곳엔 산과 강뿐 아니라 우리 이웃도 함께 합니다.
◆경주 왕의 길
한여름 뙤약볕만 아니라면 언제 찾아도 좋을 길이다. 경주 동행길을 이야기하자면 기행작가 이재호 씨가 주인장인 수오재(한옥펜션)를 빼놓을 수 없다. 수오재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질 정도. '왕의 길'도 이재호 씨가 붙인 이름이다. 수오재 뒤편 효공왕릉에서 시작해 낭산 자락의 선덕여왕릉을 지나 구황리 삼층석탑, 진평왕릉을 거쳐 보문동 들판의 천년 유적지까지 한 바퀴 도는 구간. 수오재 기와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천년 세월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곳을 거닐다보면 '전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보문동 들판길을 지날 때면 논두렁 돌 하나도 가벼이 봐선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역사니까.
◆영덕 블루로드 바닷길
강구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50㎞에 이르는 '블루로드'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 꼽히는 구간. 석리(석동마을)에서 축산항까지 이르는 이 구간에선 아름다움 해송숲과 파도가 몰아치는 갯바위길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처음 동행길을 갔을 때만 해도 어린이들이 다니기 힘든 난코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비가 끝났다. 겨울바다를 감상하며 걷기에도 좋다. 기왕이면 대게철에 맞춰 찾아가면 금상첨화. 구간 중에 경정2리(대게원조마을로 알려진 차유마을)가 있기 때문이다. 축산항을 지나면 대소산 봉수대를 지나 영해 괴시마을로 이어지는 숲길 블루로드도 만날 수 있다. 오전에 걸음을 서두르면 다소 멀기는 해도 주파할 수 있다.
◆청송 주왕산 금은광이길
한여름이 오기 전에 찾아간 이 길에서 산딸기를 원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흔히 알고 있는 주왕산 탐방로 뒤쪽 길인 셈이다. 월외리에서 출발해 너구마을을 지나 금은광이까지 갈 수 있다.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다. 수십년 전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았을 뿐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이 따로 없기 때문에 아예 주왕산 폭포쪽으로 내려갈 생각이 아니라면 금은광이 삼거리쯤에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숲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한여름에 찾아도 뙤약볕으로 고생할 염려는 없다. 너구마을에는 토종벌도 치는데 꿀 값이 제법 비쌌다. 워낙 품질이 좋아서 약으로 찾는 사람들이 구입한단다.
◆울릉 내수전 옛길
행여나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통되면 사라질까봐 걱정스럽다. 사람 발길이 드문 숲을 흔히 '원시림'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에선 제대로 된 원시림을 만날 수 있다. 저동항 북쪽 내수전에서 출발해 울릉도 동북쪽 끝인 석포까지 이르는 구간. 섬에서 바라보는 섬은 생경스럽다. 죽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수전 옛길에선 내내 죽도가 곁에 보인다. 한 때 폭설과 폭우 속에 허기져서 조난당한 300여 명을 구해준 미담이 전해지는 정화매곡 쉼터도 놓쳐선 안된다. 이 곳 우물맛도 기가 막히다. 석포에 닿으면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편도 좋다. 천부까지 포장길을 걷기가 쉽잖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미리 버스시간표를 확인해야 고생을 덜한다.
◆칠곡 유학산 능선길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북편으로 우람하게 늘어선 줄기가 바로 유학산이다. 6·25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도봉사 뒤편으로 839고지에 오른 뒤 남서쪽으로 능선을 타서 내려와야 한다. 워낙 산세가 가팔라 다른 길로는 오르내릴 수가 없다. 유학정 전망대가 있는 839고지에 오르는 길이 조금 힘들 뿐 나머지 구간은 비교적 쉽다. 다만 바위를 넘어야 하는 구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산행길일 뿐이지만 60년 전 이 곳은 하루 밤에서 수 많은 주검이 쌓이던 격전지였다. 때문에 능선길 구간 곳곳에 유해발굴터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저 산세를 감상하며 걷기보다는 못다핀 꿈들이 이 곳에서 사그러진 이유를 곱씹어 보자.
◆의성 금성산 능선길
금성산과 비봉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한 바퀴 돌아서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산 입구에 있는 산운생태공원과 산운전통마을을 들러보고 산길을 오르면 좋다. 이 곳에 묘를 쓰면 일대에 가뭄이 든다는 전설 때문에 여느 산과 달리 묘터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 구간을 돌기가 버겁다면 두 산 사이에 있는 수정사 뒤편 길로 올라도 된다. 능선에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이 곳을 찾았지만 길을 걷는 내내 덥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져 있었다. 옛 소왕국인 조문국의 전설도 남아있다. 금성면에서 의성읍으로 가는 길에 조문국 경덕왕릉도 있다.
◆봉화 문수산 자락길
해발 1천205m 문수산은 봉화의 진산으로 불린다. 제대로 된 숲길을 거닐자면 바로 이곳을 찾으면 된다. 구간은 길다. 두내약수탕에서 출발해 춘양목 생산림을 지나 우곡성지까지 12㎞. 계곡이 아닌 자락길을 따라가다보니 따로 물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계절에 상관없이 거닐 수 있지만 짙은 숲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늦봄부터 가을이 제격일 듯 하다. 출발점에는 두내약수탕이 있고 도착점에는 다덕약수관광지가 있다. 가을이면 우곡성지 아래쪽에 펼쳐진 사과밭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지난 번 동행길에는 김밥을 준비해서 자락길 중턱에 앉아 먹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 맛 볼 수 없는 진미가 바로 그 곳에 있었다.
글·사진=김수용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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