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박지성

사실상 무명에 가깝던 박지성이 국내 팬들에게 각인된 계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름 정도 앞두고 가진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평가전이었다. 0대 1로 뒤지던 후반 6분, 멋진 동점 헤딩골을 터뜨렸다. 이어 5일 뒤 열린 직전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와의 평가전서도 왼발 강슛으로 동점골을 뽑았다. 프랑스는 2001년 대구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 대회에서 우리를 5대 0으로 이겼던 팀이었기에 국내 팬들의 감동은 엄청났다. 불과 5일 만에 축구 영웅으로 등장한 그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다.

2002년 6월 14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조별 리그 세 번째 경기.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연거푸 득점에 성공하며 강호 킬러 별명을 얻은 박지성은 후반 25분 16강 진출을 자축하는 동시에 루이스 피구가 버틴 거함 포르투갈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통렬한 결승골을 터뜨렸다. 골을 터뜨린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00년 4월 아시안컵 예선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지만 벤치에서 주로 보내다가 그는 2001년 1월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 때 갓 부임한 히딩크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90분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강철 체력에다 성실한 플레이와 타고난 승부 근성을 갖췄으니 히딩크의 총애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한일월드컵 이후 네덜란드로 간 그도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때는 이겼음에도 맥주가 든 종이컵이 그에게만 날아들었고, 팀 동료들도 그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진가를 발휘한 그가 에인트호벤에서 잉글랜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로 이적할 때는 '이적시키면 안 된다'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나붙었을 정도. 이는 맨유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맨유 팬들도 초기에는 박지성에게 '개고기를 먹는 나라 선수'라는 야유를 퍼붓다가 지금은 맨유의 영웅으로 대접한다. 언론들도 그에게 '이름 없는 영웅'이란 칭호를 붙였다. 화려한 스타들에 가려 있긴 하지만 승리의 일등공신이란 뜻이다.

잉글랜드에선 삼성전자와 함께 박지성이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2대 상품으로 통한다. 박지성의 존재만으로 한국 대표팀은 각국의 경계 대상이 됐다.

이런 그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A매치에서 그를 보는 재미에 빠졌던 국민들의 상실감이 상당할 것 같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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