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판매한 죄로 아버지가 체포된다. 그런데 누군가 보석금을 내고 아버지를 데려간다. 그리고 아버지는 종적을 감췄다. 문제는 집이 보석금의 담보로 잡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가족들은 길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버지를 찾아 나서지만 친척과 이웃은 모두 외면한다. 심지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까지 한다.
영화 '윈터스 본'(Winter's Bone)은 미국 남부 미주리의 한 외딴 마을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17살 소녀 리 돌리(제니퍼 로렌스). 밝고 희망에 차 있을 나이지만, 그녀는 몸이 아픈 어머니와 두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할 소녀가장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먹을 것이 없어 다람쥐를 잡아먹어야 할 형편이다.
'윈터스 본'의 배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판자로 지은 집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찌들고 찌들었다. 하얀 눈이라도 내렸으면 감춰질 텐데 잿빛 황량한 땅에 모진 바람만 분다. 이웃이고 친척도 모두 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자기들이 다칠까봐 17살 소녀를 외면한다.
아버지를 간절하게 찾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 아니다. 살아있으면 재판에 출석할 것이고, 그러면 집에서 쫓겨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있을 가망은 없다. 입막음을 하기 위해 살해된 것이 뻔하다. 죽음의 흔적이라도 찾아 증명해야 한다. 소녀는 아버지를 죽였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폭력과 살해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혹독한 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에서도 '엄마 찾아 삼만리'와 같은 영화들이 많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슬픔을 그린 영화도 있다. 이들 영화 속 정서는 대부분 가족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윈터스 본'의 정서는 정반대다. 현상금 수배전단의 '죽거나 혹은 살아있거나'(Dead or Alive)처럼 증명이 필요할 뿐이다.
'윈터스 본'은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려는 한 소녀의 가혹한 겨울을 벼짚단처럼 건조하게 그린 영화다. 소녀의 시점을 따라 카메라가 묵묵히 따라간다. 해병대라도 입대하면 4만달러가 생기지만, 그마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래도 소녀는 울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억울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더욱 가슴을 짓누른다. 울고불고 애걸복걸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허술한 옷을 입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앞으로만 나아간다.
2004년 첫 장편 '절망의 끝'으로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던 여성감독 데브라 그래닉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다니엘 우드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상과 왈도 설트 각본상을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타면서 호평을 받았다. 올해 아카데미상에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덤덤하면서도 관객의 가슴을 찌르는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가 일품이다. 19살 무명에 가까운 제니퍼 로렌스는 감정이 메마른 표정 없는 연기로 극찬을 받았으며 연말 연초의 각종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전미 비평가협회(NBR) 신인배우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유일한 피붙이의 삼촌 티어드롭 역의 존 호키스도 볼 만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잔혹하지는 않다. 얼어붙은 겨울날 보기에 지나치게 스산하고 우울한 영화다. 그러나 감독의 진정성이나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감정 과잉으로 스크린을 인공눈물로 가득 채우는 영화나 과도한 우스개로 헛웃음이 나는 영화에 식상한 관객이라면 한번 볼 만하다. 동성아트홀 개봉 중. 러닝타임 100분.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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