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침묵의 풍경 슬픔의 깊이

동원화랑 김창태 전시회

김창태 작
김창태 작 '마음의 항구'

"저에게 더 이상 남아있는 언어가 없어요. 작품에 다 쏟아냈으니까요."

작가 김창태(사진)는 20여 년간 부지런히 걸어온 끝에 지금의 풍경에 다다랐다. 3월 5일까지 동원화랑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나무와 길의 형상이 점점 사라지고 침묵과 관조가 더 짙게 깔려 있다. 이 풍경은 작가 내면에 남아 곰삭은 결과물이다.

"우리가 객관적인 풍경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면의 풍경을 선택해서 기억하는 겁니다. 제 풍경 또한 마찬가지죠. 실경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는 특이하게도 한지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단순해보이지만 점처럼 보이는 붓질을 최소 10여 회 이상 해야 지금과 같은 형상이 드러난다. 그의 그림 앞에서 느껴지는 깊이감은 작가 손의 수고로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명상에 가깝다.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지극한 슬픔이기도 하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바다, 외롭게 자리를 지키는 섬, 개활지(開豁地)에 서 있는 나무 등.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슬픔을 읽어낸다. "저의 관심은 주로 관계가 느슨한 곳, 소외돼 있는 곳에 닿아 있어요. 그림 소재로서 재미도 없고 스쳐 지나가는 곳이지요. 관계로부터 소외된 그 공간에 서 있으니 아마 슬픔의 맥락과 닿아 있지 않을까요."

혹자는 이야기한다. '그림 속 너무 깊은 침묵에 감상자가 견디지 못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지만 그는 감상자의 평가를 모질게 끊어내고자 노력했다. 그림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작가이기에 마음을 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야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이 보인다.

그의 그림에는 자연에 대한 철학도 담겨 있다. 작가는 "사람이 차지하는 것은 자연의 2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더라도 오랫동안 노동으로 등이 굽은 뒷모습만 살짝 보여준다. 집도 자연 풍경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겨울 바다에 눈이 쏟아지는 풍경을 그린 그림에는 오히려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색다른 형상을 그려냈다. 물을 가득 담은 그릇, 태양을 품은 사람 등 사람의 형상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새로운 형상을 화면에 그려낸 것. "불필요한 것은 사라지고, 끝까지 남은 이미지입니다. 사람과 작품 사이의 가교로 구체적인 형상을 도입했죠."

이 이미지는 그림이 가진 힘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림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굳이 우리나라 산하를 그리지 않아도 작가의 그림은 민족적 정서를 건드린다. 겹겹이 쌓여 있는 슬픔과 소소한 행복, 그것들이 교차되어 만들어가는 일상의 풍경이 그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미련이나 생각들이 많았지만 그것들을 버리고 나니 다른 풍경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053) 423-130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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