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은, 죽었다… 대구경북, 李대통령 신뢰가 무너졌다

"신공항 백지화는 지방자치 말살" 성토 쏟아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몰표에 대한 배신'이라는 격한 반응마저 나왔다.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지역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입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 공약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대통령"이라거나 "대통령 선거에서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난 3년여 동안에 보냈던 기대와 성원을 거둘 것"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대구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을 지고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엄용수 밀양시장은 "믿음도 신뢰도 없는 대통령"이라며 "정부는 국민을 우롱했다. 이 정부에 대한 믿음도 없고 지방자치도 말살됐다"며 시장직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대국민사기극'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진부했다. 최악의 정부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정부의 입지평가 점수가 사업 타당성 기준인 50점은 물론 40점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현 정부에 대한 점수는 이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을 선거유세에서 표를 얻으려 한 것이라며 자신이 내건 공약의 허구성을 스스로 인정한 데 이어 신공항 문제에서도 다시 한 번 '표 때문이야'였음을 재확인시켰다. 표 계산에만 열심이었을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국민의 신뢰'는 내던져버린 것이다. 지역 간 갈등을 조정, 완화시키기는커녕 극대화했으며 정책 결정을 늦추는 바람에 지역의 기대감만 올려 놓아 정부의 존재 이유마저 상실케 하는 우를 범했다.

이 대통령은 30일 백지화 발표 직후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지만 국민들이 보내는 신뢰도는 영 아니다.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은 "정부의 신뢰가 무너지고 영남권 지역 주민 모두를 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영남권 민심 달래기용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는 소위 대책들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 분산 배치, LH공사 본사 유치, 첨단의료복합단지 분양가 인하, KTX 연결성 강화 등이다. 어떤 대안도 상실감에 젖어 있는 영남권 주민들에게는 "떡 하나 먹고 떨어지라는 이야기" 정도로 들린다.

오히려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포함해 전국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싸움터로 내모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오죽하면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신공항 백지화의 반대급부로 과학벨트 분산 배치 이야기가 나오자 "지방을 오랑캐로 보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책략"이라고 주장했을까. 민주당도 이에 대해 '돌려막기' 인사에 이은 '돌려막기'식 정치라고 비난했다.

현 정부에 대한 '일편단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지역에서 가장 먼저 이 대통령의 한나라당 탈당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백지화 결정에 따른 상실감과 전폭적인 지지 끝에 돌아온 배신감이 큰 때문이다. 이한구 의원은 "대선 공약을 예사로 뒤집는 바람에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정치 불신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도대체 국민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라고 신뢰 붕괴의 문제를 제기했다. 여권의 지지기반 붕괴 조짐에 틈새를 공략하려는 전략이 엿보이긴 하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한 편의 국민 기만쇼'라고 정의를 내린 것도 모자라 "대통령의 권위는 이제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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