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리동서 대명동 출근에 4시간…"그럼 퇴근은?"

장애인의 날…휠체어 출근 박제성 씨 동행취재

휠체어 장애인 박제성 씨가 19일 오전 서구 평리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힘겹게 저상버스를 타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휠체어 장애인 박제성 씨가 19일 오전 서구 평리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힘겹게 저상버스를 타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버스와 도시철도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한 '발'이 될 수 있을까.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지체장애 1급 박제성(42) 씨의 출근길에 동행했다. 평소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박 씨는 이날 '지각할 각오'를 하고 버스와 도시철도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상버스, 1시간 30분의 기다림

"휠체어 타는 것보다 따라다니는 게 더 힘들 텐데. 오늘 고생 좀 할겁니다."

19일 오전 8시 대구 서구 평리동 이현시장 앞 버스정류장. 박 씨는 만나자마자 겁을 줬다. 남구 대명동에 있는 박 씨의 직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구지사로 출근하기 위해 버스와 도시철도로 이동하는 경로를 짰다.

평리동에서 버스를 타고 도시철도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용산역에서 내린 뒤 도시철도 2호선을 이용, 반월당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뒤 명덕역에서 하차하는 코스다. 승용차로 30분,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다.

박 씨 같은 휠체어 이용자는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만 탈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정류장 표지판에는 저상버스 운행 안내가 전혀 없었다. 오전 8시 10분. 첫 버스가 도착했지만 저상버스가 아니었다. 오전 9시 30분. 드디어 저상버스가 왔다. 1시간 30분의 기다림끝에 온 일곱 번째 버스였다. 버스를 바라보며 박 씨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류장 표지판에 저상버스 유무를 알려주는 안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상버스가 있는 노선이라도 도착예정 시각을 알 수 없어 힘이 빠지네요."

◆너무나 먼 '평등버스'

버스에 오르는 것도 녹록지 않다. 휠체어 이용자들은 저상버스 뒷문에 경사로를 고정시켜야 올라탈 수 있다. 박 씨를 본 운전기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사로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슬로프(경사로)를 내려주세요." 기사가 버튼을 누르자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자동경사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를 타는 데만 8분이 걸렸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대구 106개 노선에 1천659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지만 저상버스는 132대로 12.5%에 불과하다. 조례에 따르면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오는 2013년까지 전체 버스의 50% 이상을 저상버스로 운행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박 씨는 일본 배낭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해 고생할 마음먹고 혼자 일본 여행을 했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일본은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였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어서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박 씨는 또 저상버스가 장애인버스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계단이 없고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는 장애인은 물론 임산부와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도 편리하잖아요. 모두를 위한 '평등버스'인 셈이죠."

◆불가능한 대중교통 출퇴근

오전 10시 30분. 버스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박 씨가 용산역에서 도시철도로 환승할 수 있는 것은 엘리베이터 덕분이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도시철도역은 리프트를 타거나 리프트가 고장나면 휠체어 이용자들은 도시철도 탑승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열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 용산역과 반월당역, 명덕역 세 곳 다 열차와 플랫폼 사이 간격이 10㎝ 이상이다. 박 씨는 "나처럼 휠체어 앞바퀴를 들 수 있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거나 팔 힘이 부족한 사람들은 휠체어 앞바퀴가 끼여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전 11시 25분, 집을 나선지 약 4시간 만에 드디어 박 씨의 직장에 도착했다. 박 씨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퇴근할 때는 집에 어떻게 가죠? 다시 버스와 도시철도을 타야 하나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