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시작은 꿈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반전과 인권, 평화에 대한 이상이 극대화되었던 1960년대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정점으로 쇠락했다. 유토피아적 공동체 사회에서 이상을 구현했던 청년들은 속속 공동체를 이탈했다. 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했다. 그리고 개인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이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1970년대의 시대정신이다.
'미 디케이드'(개인의 시대)로 대변되는 70년대는 록이나 사이키델릭 같은 집단 창작의 방법론을 거부하고 개인의 생각을 음악에 담기 시작했다. 이들은 '싱어 송 라이터'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포크와 전통적인 팝음악의 어법을 수용했다. 그 정점에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팝송 가운데 하나인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기도 한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는 70년대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앨범이다. 히피즘을 외면하기 시작한 미국의 젊은이들은 서정성과 개인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음악에 심취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를 휩쓸었다. 여전히 록음악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국에서도 앨범과 싱글 모두 정상을 차지했다. 심지어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무려 278주 동안 머무르는 기록을 남긴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최고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요 활동 시기인 60년대, '사이먼 앤 가펑클'은 시대를 상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비틀스에 버금가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긴 했지만 당대를 상징하는 모던 포크의 정서와는 달랐다. 밥 딜런, 조안 바에즈가 반전과 평화를 외칠 때 이들은 사랑과 이별을 노래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비판이야말로 이념이 시류였던 시절의 오만일 것이다. 대중들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통해 정서적 위안을 삼았다는 점은 어떤 이념만큼 중요한 의미기 때문이다.
지난달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40주년 기념음반이 발매되었다. 11곡의 오리지널곡과 17곡의 라이브 레코딩을 2장의 CD에 담았다. 특히 라이브 레코딩은 앨범을 작업하던 해에 틈틈이 행했던 공연 실황을 담고 있다. 당시의 고민과 성찰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비록 1981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이뤄졌던 재결합 공연의 감동에는 못 미치겠지만 40주년 기념앨범의 발매는 설렌다.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는 시대를 이어주는 가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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