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투명한 물' 같은 배우 배종옥

'내가 책임진다' 생각하면 못할 연기가 뭐 있겠어요

'물'같은 투명한 색깔을 가졌다는 말에 연기 경력 20년을 훌쩍 넘긴 그녀의 입이 귀에 걸렸다. '칭찬은 카리스마 배우 배종옥마저 춤추게 하나 보다'란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는 "정말 대단한 극찬인데요.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 전 어딘지 모르게 주눅들 것만 같았던, 아니 상대방의 기에 눌림을 당할 것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갔던 기자는 잠시 그 생각을 접었다.

"배우 배종옥의 색깔이요? 모르겠어요. 저를 두고 색깔을 표현한다거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제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다양성을 표현하려 노력했고, 스펙트럼처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도전하려 많이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대외적인 제 이미지는 '배종옥이란 배우는 도시적 여성' '자기주장 강한 여성'이란 이미지가 크더라고요. 좀처럼 벗어지지가 않아요."

기자는 배종옥이란 배우에 대해 '물' 같은 투명한 색깔을 가졌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 어떤 색깔의 물감을 타더라도 그 색을 드러내는 물처럼 그녀가 지금껏 대중들에게 선보여온 필모그라피와 배역들은 모두 모자람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극중 캐릭터 본연의 모습이었다. 연기를 한다는 것이, 남의 인생을 내 것처럼 표현해 낸다는 것이 얼마만큼 힘든 일이란 것을 알기에 그녀가 지금껏 펼친 연기는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고 웃겼고, 나아가 박수를 이끌어냈다.

"저는 연기를 하기 전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네가 하고 싶냐'라고요.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책임지려 노력하는 것이죠. 하기 싫은 것을 하면 분명 문제가 생겨요. '내가 책임진다'라고 생각하면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결국 '하고 싶냐'가 제가 연기하는데 있어 첫 번째 질문이에요. 물론 그 때문에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부분도 있죠. 작품의 행보를 보면 알지만 제가 좀 고집스러워요. 타협하지 않는 것, 남들이 옳다고 해도 가지 않는 것, 그게 연기자 배종옥의 모습이죠. 다만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배우는 전문직이다 보니 그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일반 샐러리맨이었다면 불가능한 행보죠."

- 연기를 할 때 참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좋은 작품을, 다시 말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죠. 그 좋다는 기준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작품이 목표하는 바가 뚜렷한 것, 또 그 안에서 캐릭터가 좋은 것 등 '좋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전 좋은 작품과 캐릭터에서 힘을 얻습니다."

-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일 개봉)은 어떤 매력 때문에 출연하게 됐나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이야기가 튼튼하고, 민규동 감독이 각색한 모습도 좋았어요. 전반적으로 다 잘 나왔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가 성립된 셈이죠."

- 영화의 제목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가능한 것일까요?

"가능할 것 같아요. 우리 영화의 에필로그 장면이 남편과 대화하는 신인데, 기대 이상으로 얻어진 면이 있었어요. '당신 내가 없어도 괜찮지? 내가 보고 싶을 것 같아?'란 대사가 있는데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제가 가깝게 느낀 누군가에게 이런 일상적 이야기로 이별을 한다는 것이 참 아름답던데요.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은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나중에 죽을 때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게 뭘까'란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던져봤는데, 나이 들어서 그런지 판타스틱하고 새로운 무엇인가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작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서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 작정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촬영하면서 에피소드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힘들었던 것만 생각이 나요. 게다가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동시에 하게 돼 혹시라도 다른 색깔이 묻어날까봐 굉장히 긴장하면서 찍었어요. 아마 지금껏 제가 한 작품 중 가장 욕심 낸 것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꼭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내서 했는데, 결과를 보니 욕심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기셨어요. 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나요?

"40대 중반이 넘어가니 느껴져요.(배종옥은 올해 48세가 됐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몸과 얼굴, 그리고 정신 등이 변해요. 게다가 연기의 깊이도 달라지죠. 하지만 그런 것은 자기의 삶을 충실히 했을 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원숙해진다는 것이 그런 뜻 같아요. 그렇다고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왜 힘들었던 시기로 돌아가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인생의 끝이 있는 게 좋아요. 제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살고 싶어요. 예를 들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눕기 전에 '이제 자야지' 하는 편한 마음 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하루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샤워하고 자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할 거예요."

- 항상 연기 잘하는 배우로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런 배종옥에게도 도전하고 싶은 연기가 있나요?

"그럼요. 로맨틱이나 멜로, 드라마 등의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정말 누가 그것 좀 꼭 크게 써줬으면 좋겠어요. 로맨틱 멜로를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야 하는데 말이죠. 중년의 사랑을 아름답고 예쁘게 다루면 얼마나 좋겠어요. 상대 배우가 연하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년이 꿈꾸는 사랑, 그런 것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 그럼 '배우 배종옥'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요?

"제 꿈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좋은 작품 안에서 역시 좋은 배우로 빛나는 것이 가장 가고 싶은 길이죠. 그래서 연기에 대해 항상 배가 고파요. 좋은 작품을 꿈꾸는 배우들은 아마 저처럼 많이 배고플걸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