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추락

1830년대. 프랑스의 시골 도시에서 가난한 제재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쥘리엥은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베개 밑에 품고 살았다. 나폴레옹이야말로 맨손의 프랑스 청년들을 위해 하느님이 보낸 최고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군대에서 영달하는 길은 막혀 버렸지만, 야심적인 청년 쥘리엥은 귀족적인 용모에다 뛰어난 지성과 불굴의 의지를 무기로 출세 가도를 헤쳐나간다.

시장(市長) 집 가정교사로 들어간 쥘리엥은 시장 부인을 유혹해 사랑에 빠졌다가 쫓겨나게 된다. 신학교에 들어가 신임을 받고 파리의 대귀족인 라몰 후작의 비서가 된 그는 후작의 딸과 또다시 애정 행각을 벌이며 아이까지 갖게 한다.

하지만 딸의 결혼에 회의적이던 후작의 뒷조사로 입신출세를 위해 여자를 이용했던 방정하지 못한 과거의 품행이 밝혀지고, 무고한 시장 부인에게 총구를 겨눴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19세기 초 프랑스 격변기를 배경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던 한 청년의 욕망과 추락을 그린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은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적(赤)은 군복을, 흑(黑)은 사제복을 상징한다. 그것은 당시 프랑스의 젊은이가 출세를 위해 택할 수 있는 색깔이었다.

그러나 높은 꿈은 추락하기 마련인가. 그토록 높이 오르고 싶었던 쥘리엥의 꿈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왕정복고시대의 프랑스에만 있었을까. 국제 금융계의 '소방수'이자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의 추락도 참으로 극적이다.

높이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였지만,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찰나의 욕망이, 일순간의 실수가 프랑스의 대선 구도와 정치 스펙트럼까지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대표 출신으로 촉망받던 프로축구 선수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한순간이었다. 호텔방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된 그의 죽음은 꿈과 희망의 프로축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음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기어이 자살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왕년의 프로 축구 스타가 이루려 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욕망은 무엇인가. 어제도 오늘도 비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안전장치는 없는 것인가.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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