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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허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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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흰 빵을 먹어보았다. 처음 먹어본 흰 빵은 달콤한 향기가 나고 소화가 잘 되는 강력분을 반죽해 틀에 넣어 구워진 네모진 빵으로 속살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종이만큼이나 하얗다. 그 빵을 묘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인다. 마치 그 시절부터 세월이 전혀 흐르지 않았고 지금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내가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 그 시절의 허기는 지금도 내 안에 있다. 나는 그 허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강렬한 빛을 발하면서 내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런 허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했으리라. 행복하다는 것, 그것은 기억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불행했을까, 모르겠다. 다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배불리 먹을 때의 충족감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마침내 깨닫게 되었음을 기억할 뿐. 새하얗고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향긋하기 그지없는 냄새가 나던 그 빵, 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던 그 생선기름 그 소금, 내 입 저 안쪽과 혀 위에 들러붙어 반죽이 되던 분말 우유 몇 숟가락. 바로 그 순간 나는 살기 시작한다. 잿빛 세월에서 빠져나와 환한 빛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존재한다.'(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끌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 중에서)

이렇게 긴 문장을 인용하는 까닭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맘때만 되면 어떤 허기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눈물겨운 이 땅의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6'25전쟁 미망인, 그들은 지금도 삶의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 허기란 온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가난과 희생의 그늘이 되어 평생을 따라다니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나의 시어머니도 6월의 푸른 새벽을 서성이면서 그 시절의 불행이 다시 올까봐 몸서리친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虛氣) 때문인지 불쑥불쑥 내미는 까칠한 성격에 찔려가며, 혹은 찌르며 살아오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어릴 적 그 달콤했던 허기의 기억은 환한 존재감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여자 혼자의 힘으로 하늘을 떠받치듯 힘겨운 삶 속에서 숨겨진 허기는 일상의 허(虛)를 찌르며 허리를 꺾어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은 잿빛 삶에서 빠져나와 환한 기쁨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가. 잊혀지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과거는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미래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한 페이지의 기록에서나 일별할 뿐,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잊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은 56회 현충일이다.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 등에서 보다시피 아직도 우리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분단의 비극이 끝나지 않은 땅에 살고 있다. 이 도저한 역사의 허기를 안고 있는 6월,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계절이다. 강 문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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