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릴 때 형제가 많았다. 없는 살림에 아이만 많았다. 부모는 한두 명을 골라 학교에 보냈다. 장남 하나라도 공부시켜 성공하면 이를 언덕 삼아 나머지 형제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여기에 매달렸다. 형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 동생들은 공장과 막노동판에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희망을 말했다.
우리는 서울을 발전시키면 나라 전체가 함께 잘살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국가 자원의 많은 부분을 서울에 집중하고 지방은 희생을 강요당했다. 지방은 서울의 경쟁력 지원을 위해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다. 수많은 지방민이 서울로 가서 노동자로 변신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발전을 대한민국의 발전으로 여기고 한강의 기적에 긍지를 가졌다. 이른바 불균형 성장론이다. 경제학에서 모든 산업을 균형 있게 성장시킨다는 것은 무리이므로 전략적 분야의 성장을 통해서 서서히 전 산업의 고른 성장을 달성하자는 이론이다.
불균형 성장론은 소외된 부분의 희생을 담보하고 있는 차별 전략이다. 또 전략적 분야의 성공 과실을 소외된 부분과 함께 나눌 때 전체가 성장한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형제의 희생을 담보로 성공한 장남이 형제들을 아우를 때, 집안 전체가 화목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희생을 감수한 형제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결국은 장남도 형제들 사이에서 고독한 불안을 느끼게 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발전된 서울의 과실을 지방 발전을 위해 재투자, 재분배할 때 국가 전체가 발전하고 안정된다. 서울의 발전이 우리나라 전체의 양적 성장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수출도 늘었다. 이처럼 국가 전체의 기계적 평균은 높아졌으나, 나라 전체가 고른 발전을 한 것은 아니다. 서울은 발전을 거듭해 수도권으로 팽창했고, 그에 비례해 지방은 피폐해졌으며,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은 인재와 자본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서울의 발전과 지방의 쇠락은 불균형 전략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다. 같은 모태에서 쌍둥이가 시차를 두고 태어났을 뿐이다. 어릴 때는 몰랐던 차이가 성장을 하면서 심한 박탈감과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지방은 더 이상의 희생을 거부한다.
한 사회가 기계적 성장을 실현해도 격차와 빈곤이 많이 발생하면 발전했다고 할 수 없다. 격차와 빈곤이 증가하면 사회에는 균열과 대립이 발생하고,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면서 불안정해진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며,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균형이다. 진짜 힘은 균형에서 나온다. 자전거가 무거운 짐을 싣고 달려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균형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의 운동 능력도 균형에 달려 있다. 먹고살 만하게 되면 우리 신체도 균형 잡힌 에스라인을 추구한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는 칼럼(본지 6월 1일자)은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며, 이대로 가면 앞으로 정서적 국경선은 더 강해져서 후삼국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금 수도권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넘어설 수 없는 내적인 국경선을 강제하며 지방을 국경선 너머의 거류 외국인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해서 자신들에게 곧 닥칠 성장의 한계를 재생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간주하고 대한민국의 공간 내에서 차별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분리를 의미한다. 즉 지방의 독립을 재촉하는 것이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특별자치도를 제안했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지방이 독자 발전을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의 소외감은 지금 여기까지 와있다. 다음은 정부의 선택이다. 하나의 국가로서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서울의 블랙홀을 계속 키우면서 성장 불가능의 늪으로 빠져들 것인가. 지방도 도생(圖生)을 탐색해야 한다. 수도권에 종속돼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분리 독립이라도 해서 새 길을 찾아 나설 것인가. "우리의 소원은 (국경 없는) 통일"이다.
계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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