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인 시위,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새 문화 아이콘 10년 들여다보기

1인 시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평가 받는 촛불집회와 더불어 1인 시위가 시위 문화를 이끄는 양대 축으로 부상했다. 국내 1인 시위의 실질적 단초는 참여연대가 제공했다. 참여연대는 2000년 12월 국세청 앞에서 삼성그룹의 변칙 증여와 국세청의 안일한 조세업무를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1인 시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위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사회 새로운 시위 아이콘으로 떠오른 1인 시위 문화를 들여다 봤다.

◆전국은 지금 1인 시위 중

1인 시위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1인 시위를 살펴보면 시위 주체와 이유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대학교수·정치인·연예인·회사원·학생·경찰관·시민단체 활동가·시의원·직능단체 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반값 등록금·미군기지 고엽제매립 진상규명)뿐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를 갖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수 김흥국은 MBC라디오 '2시 만세' 퇴출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달 17일에는 삭발까지 감행했다. 경만호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달 16일 국회 정문에서 한의약육성법 개정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가졌다. 이달 14일에는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이 국회 앞에서 검찰 개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했다. 이에 앞선 13일에는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이 '교육복지 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청와대 앞에서 '교육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전개했다.

또 가수 겸 생명운동가인 이광필 씨가 이달 10일 청와대 앞에서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식량지원'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옥영문 거제시의회 의원은 이달 9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옥 의원은 "김 장군의 친일행적이 밝혀진 이상 시의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위를 하게 됐다. 동상 철거 요구가 받아들여 질 때까지 계속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달 8일에는 부산청년회 회원 전익진 씨가 부산경영자총연합회 건물 앞에서 경총의 최저임금 동결안 주장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벌였고, 여수정치개혁연대는 뇌물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수지역 시'도의원 2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광주고법 앞에서 엄정 재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전개했다.

올 5월 17일에는 이광호 전북 정읍경찰서 경위가 '공명심과 출세를 위해 억울한 죄인 만든 무능한 검사 파면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창원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경위는 자신을 구속 기소했던 전주지검 정읍지청 검사가 창원지검으로 근무지를 옮기자 창원까지 따라와 1인 시위를 벌인 것. 이 경위는 정읍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시절 면세유 불법 취득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하지만 이 경위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3월 복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여성이 대기업 임원 아들과 교제를 하다 임신을 했는데 낙태를 강요당했다며 모 대기업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다.

◆왜 1인 시위인가?

그동안 시위는 집단적 의사 표출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1인 시위가 등장하면서 시위 개념이 바뀌었다. 시위가 개인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 시위의 패러다임을 바꾼 나홀로 시위가 나타나고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는 편의성이 꼽히고 있다. 현행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2명 이상이 모여 집회를 하려면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1인 시위는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시위를 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주제를 잡아 소신껏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도 1인 시위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1인 시위에 등장하는 주제가 언론에서 다루지 않거나 다루기 힘들었던 개인적인 것이 많은 것도 이유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등장도 한몫했다. SNS가 등장하면서 개인이 이슈를 만들고 뉴스를 생산하는 1인 매체시대가 열렸다. 이제 개인은 뉴스 수신자에 머물러 있지 않고 트위터 등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뉴스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이 메세지를 전달하고 이슈를 만든다는 점에서 1인 시위와 SNS는 맥이 닿아 있다. 특히 1인 시위는 SNS를 통해 파급력을 높여가고 있다. 1인 시위가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경우 대규모 시위 못지 않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1인 시위는 돈과 조직, 오랜 준비 없이도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미디어다. 주류 언론이 말하지 않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시민들이 발굴해 공론화하면 강력한 1인 미디어로서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SNS 통해 확대 재생산

1인 시위가 SNS를 통해 사회적 연대로 발전한 대표적인 경우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다. 등록금넷(전국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네트워크)이 올 4월 12일 시작한 이후 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면서 2개월 넘게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배우 김여진,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박원석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미자 전교조 부위원장을 비롯해 학생·학부모 등이 릴레이 1인 시위에 가세해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 언론을 통해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자 가해 학생들을 출교 조치해야 한다는 비난이 들끓었지만 여론은 이내 숙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이달 8일 시작된 1인 시위였다. 특히 트위터를 통해 모집한 참가자들이 릴레이로 1인 시위를 펼쳐지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재등장했다.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진상규명을 위한 1인 시위도 전국 연대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 5월 23일부터 왜관 미군기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광화문 광장과 부천 미군기지'인천 미군기지 앞에서도 1인 시위가 전개되고 있다. 1인 시위 소식은 트위터 또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며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1인 시위 사회적기업도 등장

1인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회적 기업도 등장했다. 이창현 교수·양은주 공공미술 화가·임옥상 미술연구소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1인 시위.com'은 이달 14일 출범했다. '1인시위.com'의 기본 활동무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다. 시민들이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1인 시위의 주제와 장소 등을 올리면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이창현 교수는 "1인 시위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인 시위.com이 준비하고 있는 시위 이슈는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다.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문제이지만 정부는 미적미적 대응하고 있고 미군은 오염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미군은 각성하라, 잘못된 SOFA협정 개정하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시위를 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이달 10일에는 1인 시위 관련 책도 출간됐다. '세상을 향한 알싸한 프러포즈 일인시위'는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1인 시위를 벌인 8명을 인터뷰한 책으로 1인 시위에 나서게 된 이유'1인 시위를 하며 느낀 생각 등 1인 시위자의 진솔한 답변이 실려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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