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가시연꽃

호수는 거의 말랐다는 당신이 보낸 엽서 받았습니다

호수 위에 띄우려 했던 가시연꽃은 당분간

우편함 속에 꽂아놓겠습니다

붉은 뻘 흙 꺼칠한 무늬를 내 집 거실 바닥에 그려놓은 걸 보니

지난 밤 악어가 다녀간 듯합니다

반짝 닦인 추억 너머

호수는 얼마나 수런거릴까요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가 흠뻑 젖어 있네요

가시연꽃은 조심스레 뿌리 그쪽으로 내리겠죠

이제 그만 오세요 당신

분홍색 꽃잎 등으로 떠받치고

송종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꽃이 가시연꽃이죠. 한여름 못에 피는 그 꽃을 보러 사람들 우루루 우포로 달려가던 때. 방석만한 잎을 펴고 당신을 기다리던 꽃이 깨물었던 핏빛 유월. 그토록 하고픈 말 참아내느라 내 몸이 가득 가시를 물었던 적 있었지요. 끝끝내 견디느라 모가지가 온통 발진이 된 적 있었지요. 당신, 그 참혹을 구경하다니요?

커서 서러운 이파리 위에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이별 편지를 쓰는 시인이 있군요. 푸른 늪을 들쑤시고 다녀간 당신이라는 이름. 당신이라는 함정. 악어 이빨 숭숭 돋아난 꽃대 쑥 들이밀며 제 이파리를 찢고 피는 고통을 누가 꽃이라 했나요?

호수는 말라버리고 더 이상 내 연꽃 편지는 당신에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 이제 그만 오세요. 당신을 사랑한 건 내 스스로의 도취였다 해도 많이 울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요. 사랑 앞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지요. 더 많이 사랑했으므로 내가 늘 슬펐습니다. 내가 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오세요, 당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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