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는 인기 애니메이션이다. 일부는 남북 합작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미국이 새로운 대북 제재를 발표하면서, 제재 대상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가 직접 나서, 뽀로로는 제재 대상이 아님을 발표했다. 정치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상처를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스럽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생각해 볼 일이 적지 않다.
왜 인기 애니메이션을 북한과 함께 만들었을까? 그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노동집약적이다. 밑그림이 많을수록 생생한 화면이 만들어진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서유럽의 만화영화 하청을 맡은 바 있다. 2000년대 들어와 라이언 킹을 비롯한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의 하청 생산도 담당했다. 뽀로로 역시 마찬가지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측의 저렴한 노동력이 결합했다. 호혜적 협력 사업이다.
그리고 미국이 뽀로로가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 제재는 목적이 분명하고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고자 하는 목적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고, 무기 수출이나 마약 등 국제범죄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전면적인 경제협력 자체를 막는 봉쇄정책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한국의 대북 제재는 어떤가? '때리는 주먹이 더 아프다'는 말이 있다. 제재가 북한에 고통을 주는 것보다 우리 기업의 피해가 더 크다. 작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른바 5'24 조치를 통해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든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되었다. 애니메이션 분야의 협력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교역과 위탁가공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벌써 1년도 훨씬 지났다.
북한에 얼마나 고통을 주었을까? 별로 주지 못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수산물들은 대부분 중국으로 넘어갔다. 북한의 비교우위인 광물자원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돈 많은 중국의 남방자본이 북한 광산에 몰려들고 있다. 위탁가공은 어떤가? 남쪽 기업들과 거래하던 북한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 쪽으로 거래선을 변경했다. 뽀로로 제작에 참여했던 북한 인력들도 이제 중국과 사업하고 있다.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되어 북한이 입은 경제적 손실보다 북중 경제협력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피해를 본 것은 한국의 중소기업뿐이다. 교역업체는 막대한 손해를 봤다. 위탁가공에 참여했던 중소기업들은 부도가 나거나 도산했다. 날벼락이다. 왜 북한과 사업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국내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노동집약 업종들이 어디에서 사업을 한단 말인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봉제나 신발업종이 발붙일 곳이 있는가? 이 불안한 남북관계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개성 공단이 문을 닫으면, 대안이 없다. 그냥 망하는 것이다.
마침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할 의사를 보였다. 이런 상태로 임기가 끝난다면, 이명박 정부도 우리 국민도, 그리고 한국의 중소기업도 비극이다. 미국의 동북아 외교팀도 교체되었다. 6자회담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미국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바라고 있다. 대북정책을 전환할 시점이다. 다만 남북관계가 너무 악화되어, 몇 마디 말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면 행동이 따라야 하고, 행동을 하면 성과가 있어야 한다."(言卽行, 行卽果)는 공자의 말을 되새길 때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
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전면적인 대북 제재부터 풀어야 한다. 뽀로로처럼 북한과의 협력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업을 막아서는 안 된다. 하청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기업이 벌어들일 수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미국이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 않은가?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제재를 계속할 사업과 제재를 풀어야 할 사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뽀로로 제작에 참여했던 북한의 인력들을 누가 교육시켰는가? 우리 기업이다. 그런데 왜 우리 기업의 경쟁자인 중국이 득을 보는가? 어린이들에게만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제재의 정치경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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