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께서 며칠 전 '나도 야간 상고(商高) 출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학력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하셨잖습니까? 저도 실업계 고교를 나온 콤플렉스가 적지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지금껏 뛰어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병진(55) 운영지원과장은 대구의 대표적 실업계 고교였던 옛 대구상고(현재 상원고)를 졸업했다. 중앙부처 과장급 가운데 대구상고 출신은 그가 유일하다.
"중학교 졸업 무렵 갑자기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4남매의 맏이로서 부모님의 고생을 두고만 볼 수 없었죠.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진학했는데 어쩌다보니 공무원이 됐네요."
그는 1982년 7급 공채에 합격, 옛 영일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88올림픽조직위, 내무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1990년부터 근무하고 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30년 공직에서 고향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민영화를 추진하던 경북관광개발공사의 '생존'을 꼽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구조조정 대상이 됐지만 당시 사무관이었던 그의 노력으로 살아남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경북관광개발공사는 민간에 매각되거나 본사인 한국관광공사에 합병될 예정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흑자가 나는 회사인데 왜 없애려 하느냐, 호남을 기반으로 한 김 전 대통령의 영남권 동진(東進)정책에도 맞지않는다며 반대했죠. 결국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을 맡게 되면서 구조조정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박 과장은 또 '문화부의 와룡동 시대'를 연 일도 먼 훗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문화부는 그동안 써왔던 서울 광화문 청사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으로 바뀌면서 2013년 세종시 이전 때까지 창경궁 옆 '서울과학관'에 더부살이하는 신세다.
"원래 살던 집은 비워줘야되는데 마땅한 셋집이 없어 진땀을 흘렸죠. 서울과학관의 소관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설득도 쉽지않았습니다. 씨름 끝에 과학관 리모델링 안이 통과되면서 겨우 시름을 덜게 됐지요."
그의 별명은 '교장선생님'이다. 감사관실 근무 때 원칙주의를 고집한데다 남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려는 자세 때문에 얻은 별명이라고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좌절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지요. 잘못된 관행은 빨리 고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청도 태생인 그는 대구 동덕초교, 대구중, 대구상고, 계명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무역대학원을 수료했다. 청도군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부친 등 가족도 아직 대구를 지키고 있다. "공직에서 치열하게 산 만큼 은퇴한 뒤에는 고향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고향 발전에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어릴 때처럼 저를 아직 '반장'으로 불러주는 친구들도 그립습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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