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시내버스 '하나마나' 영어 안내방송

3억원 들여 1천658대에 서비스 도입…정류장 절반 안내 않아 지나치기

26일 대구 시내버스 안에서 하차 영어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자 외국인들이 당황해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6일 대구 시내버스 안에서 하차 영어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자 외국인들이 당황해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에 유학 온 앤드류 샌더스(30'캐나다) 씨는 최근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스타디움을 가려다 진땀을 흘렸다.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에서 604번 버스를 탔지만 목적지인 대구스타디움에서 영어 하차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목적지를 지나친 그는 다음 정류장인 자연과학고에서 내려 500여m 되돌아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진땀 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바짝 신경 썼지만 결국 두 정류장 전인 경북대 치과병원 앞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푸념했다.

대구시는 최근 3억원을 들여 시내버스 1천658대에 영어 안내방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체 시내버스 정류장 2천637곳 중 21%인 562곳에서 영어 안내방송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23, 24일 기자가 시내버스를 타 봤더니 구간에 따라 절반 이상 영어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305번 버스의 경우 달서구 용산역에서 경북대 북문까지 정류장 15곳 중 11곳에서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대구를 찾았다는 중국인 리우 펑(25'여) 씨는 "대구 명소인 오페라하우스와 서문시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두 곳에서 영어 하차 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며 "대구가 내세우는 관광지에서조차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어 안내방송이 나오는 정류장 선정 기준도 제멋대로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주요 관광명소나 숙박시설, 문화시설이 상당수 안내 대상에서 제외됐고 외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구청이나 경찰서 등 각급 관공서는 빠짐없이 안내가 나오도록 설정됐다.

시에 따르면 실제로 영어 안내가 나오는 버스 정류장 562곳 중 구'군청과 정부기관, 경찰서, 도서관, 대학, 초'중고 등 학교나 관공서가 30%(169곳)에 이른다. 반면 전통시장과 유통시설은 12%(67곳), 공원과 문화시설 등은 3.3%(19곳)에 불과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미술관, 수성아트피아, EXCO 등 주요 문화시설'전시시설'숙박업소는 빠져 있다.

여행사 관계자는 "올해가 '대구방문의 해'이고 세계육상대회기간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일본인을 위한 안내방송은 아예 없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어느 정류장에서 외국인이 많이 타고 내리는지 조사한 자료가 없어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을 만한 곳을 자체적으로 선정했다"며 "육상대회 직전까지 작업을 완료해야 했고 모든 정류장을 대상으로 외국어 안내방송을 제작할 여력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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