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일 아침마다 행복을 따요." 상주시 낙동면 유곡2리. 넓은 들판 한복판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린다. 베트남이 친정인 4명의 주부가 새벽부터 오이 수확에 한창이다. 남편들이 모두 벼농사와 소 키우기, 양계 등으로 꽤 규모 있는 영농을 한다. 하지만 자신들도 '돈을 벌겠다'며 나섰다.
처음엔 서로 몰랐지만, 한마을로 시집 와 살면서 친구가 됐다. 4명이 똘똘 뭉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등을 잘 이겨내고 있다. 오전 5시 30분이면 비닐하우스로 출근한다. 햇볕이 없는 시원할 때 일하고, 오전 10시 30분이면 정확하게 오전 일을 마친다. 그 후에는 집안일을 한다. 삼복더위인데도 "이 정도는 베트남 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더운 오후에도 일하러 나온다. 억척 주부들이다.
비닐하우스 주인 유영일(50)·현남순(47) 씨는 "임신 중에도 돈 벌 욕심에 자꾸 일하러 나와서 '예쁜 아기 낳아서 좀 키워놓은 후 일하러 나오라'고 말리고 있다"며 "일도 잘하고 집안 살림살이도 똑소리 나게 잘하는 예쁜이들"이라고 자랑한다.
응엔 티디 니우히엔(29) 씨의 한국 이름은 '히엔'이다. 남편 김연호(39) 씨는 애칭으로 '힝'이라고 부른다. 무남독녀라 귀여움을 받고 자라나 요즘도 부모님 이야기만 하면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래도 남편 김 씨의 사랑이 극진해 밝고 순수하다. 고교 졸업 후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던 히엔 씨는 지난해 7월 베트남에서 김 씨와 맞선을 본 후 3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 보자마자 서로 맘에 들었다"고 고백하며 부끄러워한다. 이들 부부는 금슬 좋기로 유명하다. 히엔 씨는 늘 남편 곁에 꼭 붙어 다닌다. 틈만 나면 남편 김 씨에게 장난을 건다. 남편 김 씨도 꾸밈없이 밝은 히엔 씨와 장난을 즐기며 정말 신부를 귀여워한다.
요즘 히엔 씨는 꿈에 부풀어 있다. 내년에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을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베트남 친정 나들이도 해주기로 약속했다"며 고마움에 또 눈물을 글썽인다.
부이 티 빚(25) 씨는 2살 난 상혁이 엄마다. 나이는 어린 편이지만 4명 중 한국에 가장 먼저 온 선배다. 늘 생글거리고 웃음 띤 표정이라 별명이 '미소 천사'다.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이듬해 5월 한국에 왔다. 시할아버지'할머니까지 모시며 4대가 함께 살면서 수년 동안 시할아버지 병시중을 든 요즘 보기 드문 효부다. 비닐하우스 주인 현남순 씨는 "새색시가 3년 동안이나 병석에 있는 시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냈다"며 "요즘 이렇게 착한 색시가 어디 있겠느냐"고 칭찬을 한다. 매주 두 번씩 공부방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이젠 말하기에도 전혀 불편이 없다. 한국사람이 다 됐다. "요즘엔 비닐하우스에서 돈 번다고 공부방에도 못 나가고 있다"며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다김 톼(27) 씨는 올해 초 한국에 왔다. 아직 한국생활이 어색하다. 하지만 먼저 온 3명의 친구가 있어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베트남의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며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인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두려움이 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신랑이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느냐"는 물음에 "얼굴이 작고, 잘생겨서 좋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면서 한국말도 잘 배워 "시댁 식구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힌다.
보티 김그엉(23) 씨는 임신 5개월째다. 한국에 온 지 2년도 채 안 됐지만, 유곡2리 마을의 슈퍼마켓을 운영한다. 결혼 전 베트남에서 2년 동안 회사생활을 한 덕분에 돈 계산도 척척 잘한다. "신랑도 너무 잘해줘서 좋고, 한국도 좋다"며 "호찌민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월낭'이 친정인데 벌써 한 번 갔다 왔다"고 자랑한다. 요즘은 아기를 가져서 신랑과 시어머니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그엉 씨의 가게는 '베트남 4인방'의 놀이터다. 낮에 비닐하우스에서 열심히 오이를 따고, 저녁에는 가끔씩 함께 베트남 음식을 해 먹는다.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서 잘살고 싶어요"라며 소원을 말한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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