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이란에서 열린 테헤란 아시안게임의 마지막 종목은 마라톤이 아니었다. 마라톤의 기원이 되는 마라톤전쟁의 패전국은 페르시아(이란의 전신). 당대 최고를 자랑하던 수만 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기억은 2천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한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을 기념하는 종목을 피날레로 장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라톤은 특히 우리나라가 가장 경쟁력을 갖춘 육상 종목이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마라톤전쟁의 승자는 그리스였고,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마라톤'이라는 종목의 탄생에 기막힌 일치였다.
하지만 지금의 42.195㎞ 거리가 확정된 것은 영국 왕실의 에피소드에서 비롯됐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메인스타디움을 출발 지점으로 하는 42㎞ 코스로 애초 설정됐다. 그러나 왕실의 말 한마디에 코스는 물론 거리마저 바뀐다. 스포츠를 좋아한 왕비 알렉산드라가 윈저궁의 발코니에서 선수들의 출발 모습을 보고 싶어한 것이다. 출발 지점을 윈저성으로 변경하면서 코스는 꼬이기 시작했다. 원저성에서 메인스타디움까지의 거리는 41.8㎞. 하지만 당시 왕인 에드워드 7세가 자신의 로열박스 앞에서 선수들이 골인하도록 해 352m가 더 늘었고, 결국 42.195㎞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영국 왕실은 인도(현재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포함)를 비롯해 상당수 국가를 식민지로 둔 강대국이었다. 마라톤 코스를 바꾸는 등 '아랫것들'을 손쉽게 부릴 수 있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후 16년의 열띤 논쟁을 거친 후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현재의 42.195㎞가 공식거리로 확정됐다. 보스턴 마라톤대회도 올림픽 기준에 맞춰 1924년부터 거리를 조정했으나, 몇 년 후 이 코스가 161m 짧았던 사실이 밝혀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거리가 확정되자 거리 측정과 기록에 대한 관심이 대두됐다. 마라톤 경기의 공식거리는 전체거리의 0.1%에 해당하는 42m의 오차만큼 늘어나는 것은 허용되지만 단 1㎝라도 짧으면 공식적인 마라톤 코스로 인정받지 못한다. 거리 측정은 도로변에서 차도 쪽으로 30㎝ 지점을 기준으로 한다. 거리 측정은 코스 실측자의 체중과 타이어 공기압, 노면상태 분석이 가능한 첨단장비가 부착된 자전거를 이용한다. 출발과 골인 지점이 다를 경우 결승점 고도가 출발지 고도보다 42m 이상 낮아지지 않도록 하여 지나친 내리막에 의한 기록향상 효과를 방지했다. 또 뒷바람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두 지점 간 직선거리가 50%인 21.047㎞를 초과하지 못하게 했다.
코스 유형은 출발과 골인 지점이 다른 편도형, 반환점을 두는 왕복형, 동일코스를 반복하는 순환형, 다른 지점을 왔다갔다 한 후 다시 출발지에 골인하는 방사형으로 구분된다. 대구 대회 마라톤 경기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종각에서 출발해 되돌아오는 다소 변형된 순환형 코스에서 열린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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