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강변의 일리노이 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에는 다국적 생화학 제조업체인 몬산토 본사가 있지만, 유령도시처럼 변해 있다. 1900년경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철도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은 일리노이 주 66개 도시 가운데 태아사망률과 조산아 비율이 가장 높고, 유아사망률이 3위다. 거리로 흘러드는 오수와 공장의 배기가스로 더러워진 공기, 토양의 높은 납 함유량, 가난, 교육 부족, 범죄, 퇴락한 건물, 불충분한 건강보험, 실업 등이 이 도시가 당면한 현실이다.
아기를 출산할 만한 병원도 없으며, 아이들은 치과질환과 영양부족에 시달린다. 지도와 전화번호부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이스트세인트루이스. 이곳의 학교들은 창문이 없고 화장실이 고장 났으며, 복도에는 전구가 나갔거나 없어서 어둑어둑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교과서가 제공되지 않는 학급이 늘어나고 냉난방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불에 탄 주택에서 성장하고 오염된 흙에서 놀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쓰레기를 지나 학교로 간다. 주 정부는 이러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의 정신적 혼란과 보건 환경을 고의적으로 간과한다. 비슷한 상황이 노스논데일과 시카고 남부, 뉴욕, 뉴저지 주 캠던에서 펼쳐진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유년시절부터 차별적으로 받아온 교육 때문에 선발제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지붕에서 비가 새고, 하수구에서 오수가 역류하고, 교실이 모자라 체육관을 4, 5개 학급이 나누어 쓰고, 심지어는 화장실에서도 수업을 하는 야만적 환경을 지닌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다.
반면 공교육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돈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로 보내거나, 아니면 공립학교 중에서도 뛰어난 아이들을 골라 받는 선발제 학교인 마그넷 스쿨에 보내려고 애쓴다. 가난한 지역 아이들은 그 부모들이 어느 곳보다도 높은 세율의 교육세를 내고 있음에도, 부유한 지역 아이들에 비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 가난한 공립학교에는 대부분 흑인 아이들이, 사립학교에는 대부분 백인 아이들이 다닌다. 선발제 고등학교에는 대부분 백인 아이들이 다니며, 약간의 아시아계와 흑인, 히스패닉이 섞여 있다. 계층과 인종분리가 교육현장에서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공교육이 불평등한 결정적 원인이 교육구별 재산세에 기초한 교육 재정에 있다고 설파한다. 지방분권적 교육 재정을 취하고 있는 미국은 인종별 계층별 거주지가 분리됨에 따라 이들의 경제력 차이가 각 지역 교육재정의 차이로 이어져, 학군별 교육 시설이나 교사진, 교사 대 학생의 비율 등 교육 여건의 심각한 불평등을 낳는다는 것이다.
도심 빈민 거주지의 경우 중도 탈락률이 50%가 넘는 학교가 부지기수이고 주위 환경 역시 열악하여 고학년이 될수록 남학생은 범죄나 마약에 빠지고 여학생의 3분의 1이 임신을 하는 등 그야말로 교육이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는 상태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가난한 제3세계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40여 년 동안 도심의 빈민 거주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미국 교육과 사회 정의의 문제에 전념해온 저자 조너선 코졸은 미국의 대도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들을 방문하여 교육현장을 목격하고, 교사와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 자신이 가난한 공립학교와 부유한 교외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기에 그의 관찰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계층과 인종분리에 기반을 둔 미국 공교육의 실체를 통렬히 파헤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식 교육제도를 뒤쫓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 공교육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과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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