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혼] 제6부 '하면 된다'-<2>새마을운동(하)

"전국 시장·군수는 포항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 만들라"

새마을운동의 본격 추진 선언이 이뤄진 경북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 진입로 모습.
새마을운동의 본격 추진 선언이 이뤄진 경북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 진입로 모습.
홍선표(83) 전 문성동장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에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문성동 시찰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홍선표(83) 전 문성동장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에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문성동 시찰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1971년 9월 17일. 멀리 비학산 운봉 위로 아침해가 떠올라 백마산 기슭 문성마을에 햇살을 비췄다. 마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전날부터 잠을 설쳤다. 새벽부터 일어나 마을청소로 분주한 주민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마을이 생긴 이래 유례없는 귀한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진객(珍客)은 다름 아닌 대통령 박정희였다.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라"

"참말로 대통령 오는 거 맞나?"

이미 주민들에게 충분히 고지가 됐고 며칠 전부터는 청와대 사람들이 사전 답사차 마을을 드나들었음에도 주민들은 이 구석진 촌동네에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오전부터 마을엔 외지 차량들로 북적였다. 장관, 도지사, 시장, 군수 등 고급관료 약 300명이 속속 마을에 도착했다. 이윽고 시곗바늘이 오후 2시 30분을 향하자 '두두두…' 요란한 헬기 소리가 울렸다. 3대의 헬기가 마을에 착륙했고 그 중 한 대의 헬기에서 내린 이는 '대한늬우스'나 텔레비전으로만 볼 수 있던 사람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날(1971년 9월 17일)은 우리나라 새마을운동 역사에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관, 전국의 시장'군수를 대동하고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을 현지 방문해 전국시장군수 비교행정회의를 주재한 것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에 나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문성동에서 박 대통령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는 "전국의 시장'군수는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고 현장에서 지시하고 "자조'자립'협동정신이 곧 새마을 정신"이라고 규정한다. 새마을 운동의 본격적 출발 선언이 경북의 시골마을 문성동에서 이뤄진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표상을 제공하다

1960년대만 해도 문성마을은 경북에서 가장 못사는 마을이었다. 구릉지대 경사지에 위치한 터라 비가 와도 물이 금방 흘러내려 농사짓기가 어려워 상습적 가뭄 피해에 시달렸다. 60여 가구 400여 주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남양 홍씨(南陽洪氏)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는 씨족 간 갈등이 심했고 주민들은 나태했으며 도박으로 세월을 허비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 이석걸(83)과 홍선표(83)라는 사람이 잘살기 운동을 주도하면서 마을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62년 홍선표 씨는 43세 나이에 동장을 맡아, 당시 기계면의 자원지도자 이석걸 씨와 가난의 때를 벗기자며 뜻을 모았다. 청년회와 부인회를 구성했고 주민들의 힘을 모았다. 두 사람의 주도 아래 주민들은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개량하고 담장을 블록으로 고쳤으며 마을회관'구판장을 지었다. 양수기를 설치해 논밭에 물을 대고 진입로 400m까지 개설해 놓고 나니 마을 환경이 완연히 달라졌다. 1967년 연 10만원 안팎이던 주민 소득도 연 23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박 대통령이 문성마을을 찾은 사연

박 대통령이 문성동을 방문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1970년 4월 22일 박 대통령은 후일 새마을운동의 원형이 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제창한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해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제1차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전국의 3만3천여 마을에 각각 335포대씩의 시멘트를 지원해 마을숙원사업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농민들이 시멘트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종의 테스트였다.

전국의 마을 가운데 문성동의 성과는 독보적이었다. 문성마을의 성공 사례를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감탄을 했다.

마을의 발전상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문화공보부는 1970년 늦가을 '자조의 마을 문성동'이라는 홍보영화를 촬영해 마을을 널리 알렸다. 선진지 시찰자들이 전국에서 수백 명씩 문성동에 몰려왔다. 홍선표 동장과 이석걸 자원지도자는 1971년 8월 5일 청와대 경제동향보고회 자리에 초청되어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포장을 각각 받았고 문성동도 새마을 가꾸기 우수 상패를 받았다.

문성동에서 만난 홍선표 옹은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대통령께서 막걸리를 권하시는데 겁이 나서 끝까지 거절했더니 장관들더러 자리를 비키라고 하시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대통령께서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가 잘살아야 안 되겠나. 마을에 한 번 내려가겠으니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새마을운동 성과 세계로 알린다

박 대통령의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다. 약속은 그로부터 한 달하고도 10여일 뒤 지켜졌다. 문성동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홍 동장을 바로 옆에 대동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렇게 말했다.

"한 부락(문성동)에 시멘트 10만원 되는 걸 줘가지고 480만원어치의 일을 몇 달 동안 해치웠습니다. 정부가 지원해준 거 약 48배가 되는 일을 몇 달 동안 해치웠습니다. 농민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정신이 일어난다면 우리 농촌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날 박 대통령이 문성동에서 관계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던 모습은 동상으로 재현되어 현지에 세워져 있다. 또한 문성동에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박 대통령 방문 기념일인 2008년 9월 17일 착공돼 이듬해 같은 날짜에 완공된 2층 규모의 이 기념관에는 새마을운동 연원과 관련한 영상'사진자료, 기록 등이 보관'전시돼 있다. 포항시는 이 기념관을 거점 삼아 2015년까지 새마을운동 체험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다음 세대에 새마을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글로벌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이지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장은 "새마을운동 체험공원에는 생태환경공원과 인성교육관, 새마을시대촌 재현공간 등이 들어선다. 올해 연말까지 실시설계용역을 마무리하고 내년 1월부터 본격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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