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생각이나 믿음이 틀렸음을 시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사람도 그렇지만 이름 있는 학자나 지도자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평가되는 케인스는 남달랐다. 자유무역을 옹호했지만 대공황을 거치면서 생각을 180도 바꾸었다. 그는 대공황이 절정에 이른 1933년에 이렇게 썼다. "자유무역 원칙에서 이탈하는 것은 어리석고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1920년을 되돌아보면서 예전처럼 자신 있게 자유무역 원칙을 옹호하지 못하게 됐다."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관계가 바뀌면 제 의견도 바뀝니다. 뾰족한 수가 있나요?"
사이먼 존슨 미국 MIT대 교수도 그런 용기를 보여준 학자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있을 때 개발도상국에 금융자유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올라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서명했다고 술회할 정도로 적극적 금융자유화론자였지만 금융위기가 터지자 누구보다 앞서 자기의 신념을 포기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9월의 어느 오후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깨달았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언했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2008년 양심선언을 했다. 소득 불평등 심화를 IT 기술의 발달로 고등교육을 받은 숙련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 격차의 결과로만 본 결과 세계화가 소득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며 학자로서의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참여정부 당시 한미 FTA를 조건부 찬성한 데 대해 반성한다"고 말했다. 개방을 피할 수 없다면 적극 열고 금융 허브 국가, 금융으로 돈 버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찬성 이유였지만 2008년 월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일 외교통상위 끝장토론에서는 "그때는 내용을 잘 몰라서 그랬다"고도 했다. 이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있는 고백인가, 아니면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고차원의 정략적 자해(自害)인가. 또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안다는 것인가? 정말로 잘 모르겠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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