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 절망하는 '근로 빈곤층'

하루 17시간 택시 몰아도 한달 겨우 150만원 벌이

7일 오전 대구 중구 한 건물에서 청소용역업체 직원이 계단청소를 하다 잠시 쉬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7일 오전 대구 중구 한 건물에서 청소용역업체 직원이 계단청소를 하다 잠시 쉬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근로 빈곤의 늪에 빠진 대구경북민들이 아우성이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빈곤 탈출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해도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젊은 세대는 빚을 안고 사회로 나와 일용직을 전전하고,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도 생활고와 노후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해도 가난한 '근로 빈곤층'

법인택시 기사 박모(51) 씨는 어둠이 짙게 깔린 오전 5시에 집을 나선다. 오전에는 거리 곳곳을 헤집으며 손님을 찾아 헤매고,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대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지친 몸을 끌고 귀가하는 시간은 자정. 박 씨는 하루 17시간 운전대를 잡지만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여만원에 불과하다. 아내는 애들 학원비라도 벌겠다며 1년 전부터 식당으로 출근하고 있다. 부부가 휴가도 잊은 채 뼈가 부서져라 일하지만 지긋지긋한 빈곤의 굴레는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

박 씨는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할 능력이 있고, 힘들게 일은 하고 있지만 소득은 최저생계비(4인가구 월 144만원)에도 못 미치는 '근로 빈곤층'은 2007년 323만 명에서 2009년 382만 명으로 2년 만에 59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한 번 빈곤 상태에 빠지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3~2008년 빈곤층을 벗어난 도시근로자는 대상자의 31.1%에 불과했다. 이는 1998~2002년 43.5%, 1990~1997년 43.6%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중하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계층하락비율은 1990~1997년 12.0%에서 1998~2002년 15.9%로 급증했고, 2003~2008년에는 17.6%나 됐다.

◆은퇴 공포 시달리는 베이비부머

은퇴 시기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현실도 캄캄하기만 하다. 은퇴 자금 마련에 소홀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은퇴와 동시에 저임금에 신음하는 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모(56) 씨는 매일 5㎞를 걸어 출근을 한다. 출퇴근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평생 공사판을 누볐던 김 씨는 3년 전 귀농의 꿈을 안고 경북 영천에 터를 잡았다. 1억원을 투자해 땅을 빌리고 각종 시설을 갖춘 뒤 버섯을 심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버섯 수확에만 2년이 걸린데다 임차료와 각종 경비를 제하고 나니 수중에는 이듬해 농사를 지을 돈조차 남지 않았다. 결국 김 씨는 도시로 돌아와 월급 100만원인 아파트 경비원 자리를 구했다. 농사를 위해 구입했던 화물차도 팔았다. 김 씨 내외가 맞벌이를 하며 버는 돈은 200여만원이지만 서울에서 3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에게 생활비까지 보내야 하는 처지라 삶은 늘 빠듯하고 고달프다. 김 씨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할 줄만 알았지 노후대비를 전혀 못 했다"며 "지금 하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 일이 유일한 인생의 동아줄인 셈"이라고 한숨지었다.

◆졸업 후 빈곤층 전락하는 젊은 세대

등록금을 빚지고 사회로 나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20, 30대들도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힘든 대구경북 젊은 세대들의 상황은 더 절박하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 고용률은 2006년 57.8%에서 2007년 57.2%, 2008년 56.5%, 2009년 56.4% 2010년 57.0%로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취업준비생 박영준(29) 씨는 매일 6시간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박 씨가 만질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60만원. 원룸 월세 20만원을 내고 한 달에 두세 번 서울에 채용 면접을 다니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20여만원이 전부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받은 3천만원을 갚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박 씨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꺼리게 됐고, 대인기피증 증세까지 겪고 있다"며 "수천만원을 빚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는 이모(32'대구 북구 산격동)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씨도 한때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에 매달렸지만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조명 공사 보조를 하고 있는 이 씨는 휴일도 없이 하루 10시간씩 일을 한다. 일거리가 생길 때마다 뛰어나가야 해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다. 매달 120만원을 받아 50만원씩 저축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은 기회도 많고 희망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처럼 30대 취업 단념자들은 채용되는 자체가 어렵다"며 "장남이라 빨리 결혼도 하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는데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눈물지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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