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편한 LP음악…"힘겨울 때 삶의 버팀목 역할을"

LP음반 마니아 김교진 대표

김교진 대표가 그의 펜트하우스 LP음반 장식장 앞에서 LP음악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김교진 대표가 그의 펜트하우스 LP음반 장식장 앞에서 LP음악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LP음악은 인간의 귀에 가장 적합한 소리를 들려줄 뿐 아니라 자연의 소리에 가까워 들을수록 빠져듭니다. 반대로 CD음악은 가볍고 차가워 1시간 이상 들으면 짜증이 납니다."

'장시간 레코드'(Long Playing Microgroove Record) 이른바 LP레코드 듣기에 심취한 김교진(52·경영학 박사) P/L Asset 및 대동건설㈜ 대표에게 LP음악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편한 음악은 가슴으로 들리고 영혼에 저장되는 것 같습니다. 김민기의 토킹 송인 '작은 별', 정미조의 '그리운 생각' 등은 LP음반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대구시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심 펜트하우스. 음향기기가 설치된 거실 벽 한쪽 장식장엔 장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희귀 음반을 비롯해 30여 년간 모은 5천여 장의 LP음반들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시세로 2억원은 족히 넘는고 한다.

김 대표는 5년째 주말마다 LP판 동호인들과 함께 자신이 소장한 음반의 노래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그의 LP음반 중 '세시봉' 출신 송창식, 한대수 등의 앨범은 동호인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방송에서조차 잘 들을 수 없는 이 곡들은 가사와 멜로디 면에서 시적인 서정성을 담고 있어 중년층의 기호와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울적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듣고 싶은 음악을 올려놓고 들어보세요. 마음이 편안해지며 엔도르핀이 솟습니다. 곡은 자신의 그때 마음 상태를 달래줄 수 있는 노래이면 됩니다. 연민의 정을 느낄 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눈이 펄펄 내릴 때면 이수미의 '눈이 내리네', 애틋한 정이 그리울 땐 정미조의 '개여울'을 듣습니다."

그는 또 선곡에 편협하지 않다. 소장 LP음반은 연주곡, 샹송, 포크송, 트로트, 클래식, 팝, 민요 등 전 영역을 망라한다. 누구에게나 힘든 중년의 삶에서 뭔가 짬을 내 음악을 듣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교 시절 음악감상실 '행복의 섬'에 들른 후 음악을 좋아하게 됐는데 당시만 해도 대구에서 실제 공연을 들을 기회는 적었습니다. 자연히 그 음악 그대로를 들을 수 있는 LP판을 사 모으기 시작했죠."

김 대표는 대학 진학 후 주말마다 서울 동대문구 황학동 LP판 가게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하루 종일 가게를 돌다 김민기판 한 장을 구했을 때는 보물을 건진 듯 좋아했다. 당시 김민기판은 나왔다 하면 금지곡이었고 당국이 모두 수거해 폐기처분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나온 곡 중 방송을 못 타고 사라진 곡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성은 클래식 수준의 명곡들이 많았죠. 이런 점들이 LP판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대중가요는 우리나라 현대음악사에서 최고의 전성기였다. 우수한 가창력을 갖춘 가수들이 많았고 반주도 전자음이 아닌 오케스트라로 연주됐기 때문에 수준도 높았다.

이런 LP음반은 1995년을 기점으로 생산이 중단된 상태. 현재 LP음반 마니아들을 위한 복각(이미 출시된 LP판을 복사하는 것)이 이뤄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희귀 LP음반은 대개 일본에 있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제게 LP음악은 건강유지에도 큰 버팀목이 됩니다. 과격한 운동보다 정서적 안정을 가져오고 피로를 확실히 덜어주기 때문이죠."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대구에 있는 10여 곳의 LP판 가게에서 동호인들과 어울려 음악을 공유하고 있다.

만국의 언어인 음악을 통해 점차 황폐화되어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음악실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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