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2005년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한 사람의 천재 CEO의 죽음을 슬퍼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열고, 사용자 지향의 그래픽 운영체계를 도입하고, 음악시장에 아이튠즈라는 새로운 유통방식을 만들어냈으며, 아이폰으로 통신시장에 혁신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마음 속에 지니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무언가 잃을 것이 있다는 삶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버려야 할 것도 많다는 의미와 다름이 아니다.
어느 연구회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다. 강사는 애플과 삼성의 가장 큰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삼성은 애플과는 달리 예술적 감수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 오히려 애플이 삼성보다 우월한 점은 바로 철학의 유무, 스토리의 유무이다.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철학에서 나온다. 애플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광고가 바로 1997년 애플에서 추방되었던 잡스가 애플로 다시 복귀하면서 내놓았던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이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흑백 화면에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간다.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리처드 브랜슨, 존 레논, 아멜리아 이어하트, 무하마드 알리, 루실 볼, 밥 딜런 등이 그들이다. 내레이터는 그들이 부적응자이거나 반항아이거나 문제아였다고 잔잔하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광고 말미에 'Think different'라는 글귀와 애플 로고가 선명하다. 사실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Think different'라는 문구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잡스는 만들어진 천재가 아니다. 정부가 천재를 양성한다고 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천재가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환경이 잘 만들어지면 지금 학생들은 천재로 잘 큰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 거기에서 히트작이 나온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 중심의 척박한 환경에서는 결코 천재가 나오지 못한다.
아이들의 다른 모습들을 인정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미친다. 그렇게 미친(狂) 아이들만이 스티브 잡스에 미칠(及) 수 있다. 기술은 자본을 축적하지만 철학은 사람을 얻는다. 자본보다 위대한 것이 사람이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미쳐야(狂) 미칠(及) 수 있다는 길의 풍경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시간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국의 교육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누군가가 다시 말한다. 현실이 그렇다고 걸어가야 할 길을 외면할 수는 없다. 미쳐야(狂) 미칠(及) 수 있다.
한준희 대구광역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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