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아성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새해 벽두부터 요란하다. 권력무상의 만고진리도 함께 들린다. '비리 없는 정부'와 '뼛속까지 서민'이란 이명박 대통령의 큰소리와 청와대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임기 중반 이후 나타난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들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새해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현 정부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던 측근들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심상찮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이젠 대통령 임기에 맞춰 '권불오년'으로 바뀔 판이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지는 권력의 끝은 늘 이런가. 지금은 감옥살이로 끝나는 것과 달리 목숨도 잃었던 과거, 권력의 무서움과 허무함을 알았기에 선조들은 나름 권력을 경계하는 좌우명 하나 정도는 가졌었다.
조선조 인조 임금 때 역관이었던 최정립(崔貞砬)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당시 통정대부(通政大夫'조선조 정3품에 해당하는 문관에게 주어진 품계)에까지 오르며 위세를 자랑하던 역관 이형장(李馨長)이나 청(淸)나라 신임을 믿고 세력을 앞세워 횡포를 부리던 정명수(鄭命壽)에게 사람들이 아부했다. 이들 집 앞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시장을 이룰 정도였지만 그는 오히려 두 사람을 피했다.
'사람들이 다 가서 붙어'도 그는 '빙산이 열을 만나면 녹듯이 권세는 얼마 안 간다'는 경계의 말(氷山之戒)을 뭇사람들에게 하며 멀리 대했다. 특히 그는 이형장의 집과 문을 마주 보는 곳에 살았지만 마주칠 것을 피해 다니는 길을 달리하며 경계를 했다. 그가 '사람됨이 세속을 벗어나 우뚝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세월이 흘러 결국 이형장은 1651년 역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참형(斬刑)을 당했고, 정명수 역시 조정에서 갖은 행패와 권세를 휘둘렀으나 1653년 청나라 땅 심양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권불십년과 짝을 이루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처럼 빙산지계는 권력자나 권력 주변 사람들에게 시대를 뛰어넘어 통하는 훈계가 되고 있다. 신년 벽두, 힘들지만 현실의 삶에 만족하고 소박하게 살자며 많은 사람들이 세웠을 '지족'(知足'만족함을 앎)의 다짐들이 한 달도 되지 않아 허물어질까 걱정스럽다. 봄이 오면 겨울은 비켜나고 얼음도 녹는다는 사실을 되새겨봄 직하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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