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은 "내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삼국유사는 우리 나라 고대의 정치'사회'문화생활을 기록한 대 서사시다. 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1206~1289)과 비슬산의 인연은 아주 각별하다.
일연은 35년 동안 비슬산에 머물며 삼국유사 집필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보당암을 비롯해 용천사, 인흥사, 유가사, 용연사, 남지장사 등 비슬산 자락의 사찰'암자 등을 옮겨다니며 머문 흔적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일연이 태어난 곳은 달성의 비슬산과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경산 압량이다. 성은 김씨였고 이름은 견명이었다. 일연의 어머니는 어린아들을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연의 출생은 태몽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모친은 밝은 태양의 빛줄기가 배를 뚫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한다. 그것은 붉은 해 같았으나 해는 분명 아니었다. 그로부터 바로 임신이 되고 열 달 후에 일연이 태어났다. 볼'見', 밝을'明' 이름은 견명(見明)이었다.
일연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아홉 살(1214년)때 전라도 무등산의 무량사로 갔다. 어머니는 자식 공부에 대한 열성이 대단했다. 무량사는 절이기는 하지만 불법을 닦아 스님이 되려는 사람들만 머문 곳이 아니었다.
무량사에서 5년 동안 머문 일연에게 스승은 "네가 이곳에서 공부한 것은 불법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도리야 어디 다를바가 있겠느냐. 어느 한 쪽에 치우치다 보면 다른 곳을 볼 수가 없느니라"하며 강원도 양양 진전사의 대웅화상에게 보내는 사찰을 한 장 써주면서 그리 가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했다.
일연은 진전사로 가는 도중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 압량에 들렀다. 무량사를 떠난 지 보름 만에 도착한 아들을 어머니는 눈물로 맞이한다. 하룻밤이 지나고 어머니는 "그래 어째 공부는 다 마친 것이냐?"하고 묻는다. 일연은"아닙니다, 저의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하고 답했다.
어머니가 크게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자 일연은 "그동안 글을 배우긴 했습니다만…. 이제 저는 불법을 닦고 싶습니다. 어머니께 출가를 허락받고자 왔습니다"하며 엎드려 절했다.
일연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후 고향집에서 사흘을 묵고 진전사로 발길을 옮긴다. 진전사에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스님은 일연을 조용히 부른다. 노스님은 삭도로 일연의 머리를 밀면서"앞으로 네 이름은 회연(晦然)이니라 어두울 회(晦), 그럴 연(然)이다. 알겠느냐"며 다시 말을 잇는다.
"초명이 견명이라 했지? 어둠이 없는데 밝음이 있겠느냐. 잘새겨 두거라"며 다짐시켰다.
이때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된 일연은 22세 되던 해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을 보게 된다. 선불장은 개성의 광명사에서 치러졌다. 당연히 일연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것도 장원인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한 것이다.
선불장에 붙고 진전사로 돌아오자마자 큰스님은 일연에게"이제 너는 이곳을 떠나거라. 글은 그만큼 익혔으면 되는 것, 실행으로 깨닫고 중생을 구제해야 하느니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산문을 나선 일연에게 문득 뭔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3천의 암자가 있다는 비슬산(포산)이었다. 일연은 진전사에서 경주를 지나 고향에 들러 어머니를 만나고 비슬산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마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어머니를 뵌지 8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는 것이었다.
일연을 맞은 어머니는 아들이 선불장에서 그것도 당당히 수석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어머니는 "그래 이제는 어디로 갈 참이신가"하고 물었다. 일연은 "현풍의 비슬산으로 가서 수행을 할 작정입니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이제는 집과 가까이에 있을 것이란 아들의 대답에 안색이 편안해졌고 일연 또한 마침 농사철이라 농사일을 돕고 길을 떠날 요량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출가한 사람이 속가에 들른 것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거늘 잔정에 이끌려 수행을 게을리하는 것은 안된다"며 빨리 떠날 것을 재촉했다.
그길로 집을 나선 일연은 이틀 만에 가면 되는 길이었으나 거의 닷새 만에 현풍의 비슬산에 도착했다. 어느 암자에 갈 것이라고 미리 정해 놓지 않았다. 가는 길에 이곳저곳을 돌며 탁발을 했다.
비슬산은 높고도 골이 깊었다. 일연은 선승으로서의 수행을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겼다. 거처를 이곳 저곳 헤매다가 수소문 끝에 마침 주인없는 절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보당암'(寶幢庵)이었다.
보당암을 둘러보니 썩 잘꾸며지진 않았지만 법당과 요사채는 그런대로 갖춰져 있었다. 일연은 보당암에서 삼국유사 집필의 기틀을 마련한다. 신라 때 관기와 도성이라는 두 스님이 비슬산에서 은둔한 설화 등 다수의 기록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
내용은 이렇다. 관기와 도성 두 스님은 비슬산에 숨어 살았는데 십여 리 떨어진 거리에 관기는 남쪽고개에, 도성은 북쪽 바위 구멍 자리에 암자를 잡고 서로 오가며 놀곤했다. 이때 도성이 관기를 맞으려 하면 산중의 나무가 모두 남쪽으로 엎어졌고, 관기가 도성을 맞을 때는 반대로 북쪽으로 엎드렸다고 한다. 어느날 도성이 그의 암자 뒤 높은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바위에서 공중으로 사라지니 관기도 그 뒤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훗날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이첨(李詹)은'보당암을 중창하고 법화삼매 법회를 여는 소(疏)'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제까지 저축하였던 조그마한 재산을 정성껏 보시하고 희사하고자 합니다. 이 비슬산 위에 보당암이 있는데 터만 남아 있고 그 밖의 것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바람과 비에 쓸려서 난간이 꺾어지고 기왓장이 헐린 지 오래이며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으면서 수많은 날과 달이 바뀌었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수고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량은 예처럼 빛이 나고 단청은 새로 찬란하게 되었습니다.
일연이 보당암에서 나이 서른을 맞은 해 몽골군은 고려를 침공했다. 몽골의 3차 침입이었다.
일연은 몽골군을 피하기 위해 문수보살에게 지혜를 구한다. 기도가 통했던지 문수보살이 벽 사이에서 나타나 일연이 가야 할 곳이 무주(無住)라고 알려 주었다.
일연은 다음해 여름 무주 인근의 묘문암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 묘문암에서 일연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비슬산에서 내려와 경남 남해의 정림사 주지가 된다.
일연이 정림사 주지가 된 것은 팔만대장경 간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몽골에 의해 불타버린 황룡사 구층목탑과 부인사의 대장경을 보면서 팔만대장경 간행을 통해 민심을 모으고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일연은 정림사에서 길상암으로, 다시 왕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간다. 무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원종은 불교계를 쇄신하기 위해 일연을 강화도로 불렀던 것이다.
3년 후엔 강화도를 떠나 포항 부근의 오어사 주지가 된다. 일연은 오어사로 가는 길에 고향집 어머니를 찾아 하룻밤을 보낸다. 불법의 인연으로 승려의 길을 걷고 이제 한평생을 보낸 스님. 집을 떠나 머리를 깎은 지 50년 세월이 흐른 나이에 대선사의 지위에 오른다. 하지만 대선사의 마음속에서 단 한번도 어머니가 떠난 적이 없었다.
일연은 다시 1264년 비슬산의 인홍사(지금의 화원읍 본리리)로 돌아간다. 소식을 접한 학식 있는 스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충렬왕이 즉위한 뒤 인홍사를 인흥사로 고치고 사액을 내린다. 인흥사에서 일연이 한 가장 큰 일은'역대연표'를 만든 것이다. 이'역대연표'의 일부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다.
이어 일연은 비슬산 동쪽 기슭에 통천사를 수리해 불일사라 명했다. 통천사는 원래 화엄 십찰의 하나였다. 일연의 비슬산 시절은 22세(1227년)부터 44세(1249년)까지 22년간과, 59세(1264년)부터 72세(1277년)까지 13년간을 더해 35년에 이른다.
일연은 경주에 머물던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 갔다가 개경으로 올라가 광명사에 머문다. 그리고 국사에 책봉된다. 일연의 나이 일흔여덟살 때다.
그러나 일연은 70년을 떠나 있던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충렬왕에게 사직을 고하고 귀향한다. 이때 일연 어머니의 나이는 아흔다섯이었다. 그 이듬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일연은 운문사를 떠나 군위 인각사로 간다. 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든네 살(1289년)이 되던 해에 일연은 인각사에서 열반했다.
달성·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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