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TK, 집단따돌림에서 벗어나야

새누리당 공천이 확정되면서 대구경북 지역은 벌써부터 '총선은 끝났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지역 시'도당이 그렇고, 그 당에서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그렇다. 예선보다 본선이 치열한 다른 지역과 달리 대구경북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예선이 곧 본선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예선에서 이기면 게임 끝이란 인식 탓에 새누리당 후보들은 공천에만 목을 매다시피 했다. 새누리당 공천이 이뤄지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과 후보에게 유권자는 없고 공천권자만 있다. 민정당부터 뿌리를 이어온 새누리당에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대구경북 유권자는 뒷전이었다. 지역민들은 선거 때마다 구경꾼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새누리당의 오만함에도 기인하지만 그동안 지역민들이 보였던 투표 행태도 큰 몫을 했다. 인물과 정책에는 눈을 감고 '저 당은 우리 당'이라는 허상 속에 '묻지 마' 투표를 숱하게 되풀이해온 결과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 결과는 지역 민심을 외면하는 서울 TK의 양산이었다. 서울 TK는 또 지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만 큰소리치고 중앙무대에서는 경쟁력 없는 허울 좋은 왕따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새누리당이 지역 유권자를 핫바지로 보고 있다는 점은 이번 대구경북 공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선거에서 상대팀과 맞붙을 대표선수 선발과 적절한 배치는 스포츠경기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역 공천에서는 예외였다. 공격수와 골키퍼, 주전과 후보를 맞바꾸거나 심지어 선수 대신 경기에 관심 있는 관중을 차출하기도 했다. 지명타자에게 유격수를 맡기거나 투수와 포수를 맞바꾸는가 하면 볼 보이를 1루수로 발탁(?)하는 식이었다.

이런 경기나 선거에서 관중이나 유권자의 관심도가 높을 리 만무하다. 대구 12개 선거구 가운데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중남구, 김부겸 국회의원이 지역 야당의 대표주자로 나선 수성갑 지역이 그나마 눈길을 모으는 경기장이다. 경북 15개 선거구 중에서도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포항남울릉 선거구, 유력 인사들의 맞대결이 예상되는 북부 일부 지역 등 2, 3곳이 고작이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선수(選數)에 따라 목소리 강도나 대접이 달라진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 요직도 다선 중심이다. 초선은 다선에 비해 홀대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구경북 국회의원만큼은 선수와 상관없이 죄다 푸대접을 받아왔다. 같은 선수라도 차원이 다르다는 비아냥거림을 다른 지역 의원들로부터 받아온 것이다. 광야에서 온갖 풍상을 견뎌내고 자란 나무와 온실 속 화분에서 쉽게 영양분을 공급받은 나무의 경쟁력이 같을 수 없다는 논리다. 철저한 검증을 바탕으로 치열한 예선과 본선을 거쳐 힘겹게 배지를 단 국회의원과 꽂은 깃발만 쉽게 낚아챈 대구경북 국회의원이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선수에 상관없이 '왕따 국회의원'으로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게다.

치열한 본선을 거친 지역 국회의원들이 중앙무대에 포진하고 있었더라면 남부권신공항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굵직한 현안을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치열한 본선의 장을 마련하지 않은 채 허상에만 매달려 꽂은 깃발에 박수만 쳐준 지역 유권자들의 책임도 무겁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인천 송도 국제도시, 충남 세종시, 전북 새만금 간척사업, 전남 여수세계박람회, 강원 평창동계올림픽 등 장밋빛 미래가 예약된 도시들의 힘은 모두 해당 지역민들의 지혜와 정치권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묻지 마 투표와 왕따 국회의원 양산의 악순환은 결코 지역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지역 유권자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역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공천권자가 아니라 유권자를 두려워할 때 그 두려움이 곧바로 지역 발전을 위한 청사진 마련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2, 3개 정당을 적절히 배분하고 서로 경쟁시켜가며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충청권이나 강원권 유권자들의 지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에야말로 대구경북이 '낙동강 오리 알'이나 전국적인 집단 따돌림 신세를 면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이번 총선은 중앙에서 큰소리치는 당당한 국회의원과 공천권자보다 더 대접받고 두려운 유권자가 되느냐, 아니면 왕따 국회의원과 핫바지 유권자를 또다시 양산하느냐를 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구/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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