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이 난다. 골목 한 귀퉁이 작은 화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다. 본래 이 자리는 거리의 온갖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진동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쓰레기 무단 투척에 대한 경고문이 붙었다. 처음엔 비교적 점잖았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양심을 버리지 마세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곧이어 섬뜩한 푯말이 나붙기 시작했다. '쓰레기 몰래 버리는 인간은 쓰레기!' 살벌하다. 골목은 인심이라고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핏발 곤두선 전쟁터 같았다. 하지만 이런 강경한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쓰레기는 계속 쌓여갔다.
쓰레기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말끔하게 치우고 그 자리에 국화 화분 몇 개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골목 안에 꽉 찬 꽃향기는 버리는 자와 막는 자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멈추게 했다. 화분 몇 개가 골목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국화 향기가 도심의 야박한 이기심의 울타리를 허물고 마음 문을 열게 한 것일까. 쓰레기로 가녀린 꽃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착한 본성이 내면의 뜰에서 잠자고 있던 양심을 깨운 것일까.
1990년대 중반, 뉴욕은 도시범죄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묘안을 찾았다. 그것은 길거리의 낙서를 지우는 일이었다. 어두운 뒷골목, 지하도 벽면, 지하철 차량 등의 지저분한 낙서를 낱낱이 찾아 지웠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75%나 급감했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맑고 깨끗한 곳에 더러움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 악을 이기는 것은 더 강한 악이 아니라 선한 마음이라는 것, 부드러운 사랑은 폭력이 허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세운다는 것을 인간의 순수 본능이 먼저 알았던 것일까.
국화가 이 삭막한 거리에 내뿜는 것이 향기뿐이겠는가. 그것은 마음의 울림이다. 마음 깊숙이 숨겨진 가장 부드러운 본성을 눈뜨게 한 것이다. 깊이 여물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부드러움은 나약함이라고. 아니다. 부드러움은 내 안에 있는 야생마와 같은 속성이 성숙한 인격에 의해 잘 다듬어지고 조절된 상태다.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군림과 억압이 아니다. 사막처럼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젖게 하고, 인간의 강퍅함을 맥 못 추게 하는 힘, 바로 부드러움의 힘이다.
딱딱한 바위에 아름다운 곡선이 생기는 것은 쇠망치로 두들겨 깎은 것이 아닌 오랜 세월 흘러내린 부드러운 물결 때문이다. 굵은 감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은 거센 비바람이 아니라 솜처럼 내려서 쌓인 눈이다. 그렇다면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팍팍한 마음을 녹이는 것은 강경한 푯말이 아니라 부드러운 꽃향기가 아닐까.
왈칵 쏟아지는 햇살조차 과격해 보여서일까. 나뭇잎 사이로 가늘게 내리는 한 자락 햇살은 칙칙한 거리를 붉고 하얗게 물들인 골목 천사의 마음처럼 부드럽다. 골목 안에 꽃향기가 함빡 쌓인다. 이보다 부드러울 수 있을까.
<수필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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