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만인에 대한 투쟁 시대-정재용

사람 만나기가 겁난다. 웃으면서 다가오는 사람을 미리 피한다. 선의로 접근하는 사람조차도 의심하면서 대해야만 손해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무서운 시대다. 차를 몰고 신호를 받아 전진해도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무단횡단 중인 청소년이 도로를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칫 경적을 울리거나 창문을 내리고 훈계했다간 삿대질에 쌍욕을 감수해야 한다. 교복 입은 아이가 담배를 피워도,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려도, 심지어 남녀 아이가 아파트 옥상에서 무슨 짓을 해도 모른 채 해야 아이 부모와의 싸움에서 피할 수 있다. 요즈음 동네북 신세가 된 교사가 훈계하다간 학부모의 질책은 차치하고 교육청 투서에다가 고소까지 덩이지게 당할 수 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서 치부한 정치인이나, 종교를 빙자하여 향락을 누리는 종교인이나,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형사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적 권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며 손으로 햇빛을 가리겠다는 정치인을 보고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야 한다. 순진하게 이설을 달았다간 용팔이나 완장부대의 표적이 되어 머리끄덩이가 잡히거나 죽창에 찔릴 수 있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성경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해수(海獸)다. 천하무적의 괴물이기에 그를 상대할 사람은 없다. 이는 또한 17세기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쓴 철학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국가에 비유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이므로 평화가 없기에 사회계약에 의해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즉 인간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선 리바이어던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득 2만달러로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격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만인에 대한 투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을…. 나 이외에 만인과 투쟁하다보니 직장에선 동료의식이 사라지고 이웃간에는 담을 쌓아야 하고, 왕따 시킨 아이에게 빵셔틀을 시켜야 하는 것을….

원시시대로 회귀한 느낌이다. 가진 것 없이 노쇠한 사람은 무리에서 쫓겨난 이빨 빠진 사자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학생이 교사를, 젊은이가 노인을 훈계하는 시대에 리바이어던이 존재한들 무엇하리.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동굴에서 사냥한 동물을 구워 나눠 먹으면서 원시공동체에 속한 사람만이라도 만인에 대한 투쟁이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조차 갖은 의심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리바이어던을 구성한 위정자들이 초래한 결과에 만인이 질식하기 직전이다. 우리는 언제쯤 상호불신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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