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읽기] '너희'에 대해 학습하라

'우리와 너희'(US Against Them)'

도날드 킨더 & 신디 캄 저 (2009, 시카고대학 출판부)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레비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우리'와 '너희' 혹은 '내 집단'(ingroup)과 '타 집단'(outgroup) 구분은 가장 오래된, 인간의 생득적 태도 중 하나다. 우리와 너희의 이 단순한 구분은 내 집단에 대한 자긍심 혹은 우월 의식과 타 집단에 대한 멸시를 만들어 내고, 나아가 내 집단엔 호의적으로 타 집단에는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동기가 형성된다. 킨더와 캄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이러한 자기집단중심주의(ethnocentrism)는 안보와 대 테러정책, 이민, 소수인종, 여성과 동성애자, 사회개혁 프로그램 등에 대한 여론 형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와 너희가 동등한 세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와 너희는 힘의 불균형 속에서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로 연결된다. 우리와 너희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고,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기준이 '다름'이라는 단순한 차이라고 한다면 여기엔 어떤 합리성도 없다. 결국 자연적 '우연'이 이성적 '선택'을 봉쇄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여론이 이렇게 자연적이지만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 사회 역시 자기집단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연, 혈연, 학연에 의한 집단주의의 위력은 여전하다. 나를 구성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우연적인 것에 의해 차별받거나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일 뿐 아니라, 그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불가항력의 공포다. 우연히 다수 집단에 속한 개인들 역시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집단중심적 태도가 마땅히 제어되어 할 편향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보다 완전한 혹은 행복한 인격체가 될 수 없다. 차별과 적대의 대상뿐 아니라 주체 역시 행복할 수 없다. 미워하는 건 사랑하는 것보다 몇 갑절 힘겨운 감정의 소비이기 때문이다. 자기집단중심주의라는 자연적이지만 이성적이지 않은 태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얼까? 킨더와 캄에 따르면 그것은 '지식'이다. 타 집단에 대한 이해, 공감, 연대는 정서적 태도이지만 그것은 '학습'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다. 너희에 대한 학습을 시작하자.

계명대 미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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