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염과 싸우는 사람들] <4> 급식 자원봉사자 고순교 씨

"힘든 이웃들 맛있게 먹을 생각에 더위 잊어"

지난달 31일 대구 수성구 고산동 청곡종합사회복지관 식당 자원봉사자 고순교 씨가 국수를 삶으며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지난달 31일 대구 수성구 고산동 청곡종합사회복지관 식당 자원봉사자 고순교 씨가 국수를 삶으며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30인분 국을 끓이다 보면 불길에도 익숙해져요.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폭염도 화염도 두렵지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대구 수성구 고산동 청곡종합사회복지관 내 식당. 30㎡ 남짓한 주방에서 노란 조끼와 파란 고무장화를 신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자원봉사자 고순교(68'여) 씨가 고추를 다지고 있었다. 주방은 가스레인지에서 내뿜는 열기로 후끈거렸다. 여기에다 고추를 다지면서 나는 매운 냄새 때문에 고 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슴부터 발목까지 오는 비닐 앞치마를 입고 고무장화를 신으면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아 속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선풍기 2대는 더위를 식히기에 역부족이고, 이마저 불길이 약해질까 봐 마음껏 틀 수도 없다. '찜통'이 따로 없는 셈.

고 씨는 "노인들이 식당에 들어오는 낮 12시 전에 식사 준비를 끝내려면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점심메뉴는 잔치국수. 국과 반찬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다른 메뉴에 비해 잔 손길이 덜 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수가 낮 12시부터 원활하게 배식되려면 고명과 양념장을 만들 각종 채소를 씻고 다듬은 다음 채 썰거나 다져야 하기 때문.

고 씨 외에도 적십자사 2명, 인근 노변타운 부녀회 자원봉사자 8명 등 11명은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오전 11시쯤 배식 준비를 마치고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도시락을 준비하기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구수한 농담과 웃음이 오가는 것도 이때다. 고 씨는 "다른 봉사자들과 양푼에 커피가루를 풀어 나눠 먹는 냉커피 한 잔이면 뼛속까지 시원해진다"고 했다.

정오를 전후해 인근 노인들이 무료 점심을 위해 복지관 문을 두드릴 때면 잠깐의 휴식도 끝이 난다. 미리 끓여놓은 물에 소면을 넣어 삶은 다음 찬물에 헹구고 바구니를 세게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다. 준비된 그릇에 한 움큼 집어든 소면과 고명을 담고 육수를 부으면 배식 준비가 끝난다.

줄지은 노인들의 점심식사가 끝이 나면 오후 1시가 넘는다.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은 노인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면 고 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오전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다.

이곳에서 봉사가 끝난 고 씨는 오후에는 범물복지관으로 달려간다. 홀몸노인들을 위한 저녁식사 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일이 끝나면 오후 5시. 집으로 돌아가면 무더위와 봉사 준비에 지친 몸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봉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고 씨는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목욕 봉사, 도시락 전달, 무료 급식 등을 한다.

고 씨는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무더위로 젖은 옷을 세탁하는 것도 큰 일과"라며 "하지만 이 나이에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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