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여러 형식 혹은 사조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서 일반인들이 낯설게 느꼈을 법한 '부조리극'이라는 것이 있다. 부조리극, 즉 부조리 연극은 조리에 맞지 아니하다는 뜻인데 인생의 의미 없음이나, 목적 없음, 충동성 등을 담고 있다. 발생은 제2차 세계대전 후로 프랑스가 중심이었다. 복잡하고 불안한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정서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인식되어 한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와해와 전후의 참혹한 사회상은 현대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혼란과 회의를 가져다주어,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부조리의 문제와 직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르트르나 카뮈의 실존주의에 의해 점차 영향력 있는 문예운동으로 확산되었는데, 이는 바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걸쳐 극작활동을 한 일련의 극작가들에 의해서 부조리극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부조리극이라는 용어는 1961년에 발표된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의 '부조리 연극'(The Theater of the Absurd)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대표적 작가로는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와 헤롤드 핀터(Harold Pinter) 등이 있다. 부조리란 단어가 본래 타당성이나 일관성이 없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부조리극 역시 인간조건의 무의미성과 부조리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비논리적이며 비인과적인 형식을 채택하게 된다.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중심으로 하여 부조리극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부조리극에는 유기적인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다. 두 주인공이 그저 고도를 기다린다는 상황 자체가 플롯의 전부이며, 그 기다림 자체가 유일한 행동이자 사건인 것이다.
둘째, 발단이나 전개, 절정의 과정이 없는 직선적인 구조나 시작과 끝이 동일한 반복적인 순환구조를 지닌다. 고도를 기다리는 데에서 극이 시작하고, 결국 고도를 기다리면서 끝남으로써 처음과 끝이 같은 순환구조이다.
셋째, 부조리극은 삶의 원칙이나 도덕적 행동규범을 상실하고, 선택이나 판단의 기준마저 잃어버린 인간의 상황 자체가 주제인 만큼, 인생에 결부되어 있는 모든 사건과 인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나 심리묘사가 배제된다.
넷째, 부조리극에서는 하나의 정체되고 고립된 시'공간적 상황이 설정되며, 오로지 단적인 현실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무대장치 역시 극도로 제한된다. 두 주인공은 고도를 기다리는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며, 정확한 날짜와 요일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들에게는 과거나 현재, 미래라는 시간 개념이 무의미하며, 무대장치 역시 단지 한 그루의 나무만이 서있는 텅 빈 공간을 보여줄 뿐이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분절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며, 무의미하게 지껄여지므로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연결성이 없는 독백처럼 여겨진다.
여섯째, 언어의 역할이 제한된 반면 무언극이나 서커스 등을 통해 과장된 몸 동작이 적극 활용되는데, 등장인물의 황당한 헛소리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다소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투영된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의 이미지는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고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이처럼 전통적인 극 형식을 타파하여, 플롯이나 성격묘사, 무대장치 등의 요소를 과감히 내던져 버린 부조리극은 혼란과 회의 속에서 흔들리는 현대인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즉, 부조리극은 해체된 인간세계 속의 부조리함을 다루므로 어떤 주제나 이념을 논하기보다는 극한 상황 속에 놓인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는 '상황'의 극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생존하고 있는 현대인의 절망과 허무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실존의 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사랑받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일반관객이나 평단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도소 공연에서 죄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죄수들에겐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대상인 '고도'의 개념이 '출소'라는 개념으로 생각되어 자신들에게 명확하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 처해 괴로울 때 연극 한 편이 큰 위로가 되어주는 걸 증명하는 좋은 일화인 셈이다. 슬플 땐 슬픈 음악이 마음을 위로하듯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면 부조리극 한 편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어떨까?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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